AI가 롤까지 정복할까…머스크 xAI 그록5, T1에 도전장
인공지능이 인간 선수와 동일한 조건에서 e스포츠 최정상 팀에 도전하는 구도가 그려지고 있다. 테슬라 최고경영자이자 xAI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차세대 AI 모델 그록5로 리그 오브 레전드 세계 최강 팀 T1과의 대결을 제안했고, T1 측이 곧바로 수락 의사를 밝히면서다. AI가 실제 게임 화면을 보고 제한된 속도로 조작해 인간과 맞붙는 실험이 현실화할 경우, 게임 AI를 넘어 인간 수준 범용 AI의 기술력을 점검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머스크는 25일 현지시간 소셜 플랫폼 엑스에 글을 올려 그록5가 2026년 당시 최고의 리그 오브 레전드 인간 팀을 이길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다고 언급했다. 그록5는 xAI가 개발 중인 차세대 대규모 AI 모델로, 당초 올해 연말 공개가 예고됐지만 출시 목표가 내년 1분기로 미뤄진 상태다. 머스크가 시점을 2026년으로 잡은 것은 모델 고도화와 게임 특화 학습, 경기 세팅 준비 등을 고려한 로드맵으로 해석된다.
머스크는 그록5의 설계 철학도 함께 공개했다. 설명서를 읽고 직접 실험해 보는 것만으로 어떤 게임이든 플레이하도록 설계됐다고 강조하며, 특정 게임 전용으로 룰을 주입하는 기존 방식과 다른 접근을 시사했다. 텍스트 매뉴얼과 실제 플레이 로그를 통해 규칙을 이해하고, 전략을 스스로 검증하는 일반지능 형태의 학습 방식을 내세운 셈이다.
대결 제안에서 머스크가 내건 조건도 눈길을 끈다. 그록5는 모니터 화면만 볼 수 있고, 인간 정상 시력 수준에서만 정보를 인식하게 하며, 반응 속도와 클릭 속도를 제한하는 등 인간 선수와 유사한 제약을 두겠다고 밝혔다. 이는 서버 내부 정보나 초인간 수준의 입력 속도에 의존하던 기존 게임 AI와 달리, 실제 프로 게이머와 같은 인터페이스와 생체 한계에 가까운 조건을 맞추려는 시도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세팅이 AI의 전략 수립 능력과 판단력 자체를 검증하는 데 초점을 둔 것으로 보고 있다.
머스크 발언이 공개된 직후 T1은 엑스 공식 계정에 간판 스타 페이커 이상혁이 ‘쉿’ 포즈를 취한 이미지를 올리며 우린 준비됐다, 당신은 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에서 사상 첫 3연속 우승을 거둔 팀으로서, AI와의 정면 승부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상징적 응답으로 받아들여진다. T1 측 참여가 기정사실화될 경우, 실제 매치업은 글로벌 e스포츠 팬층과 AI 연구진 모두의 관심을 끌 전망이다.
게임 산업과 AI 업계에서는 이번 제안이 e스포츠를 시험장으로 삼는 차세대 AI 경쟁 구도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기존에도 특정 게임에서 AI가 인간을 압도한 전례는 있었다. 바둑에서는 알파고가, 실시간 전략 게임에서는 딥마인드와 오픈AI의 에이전트가 프로 선수들을 상대로 우위를 입증한 바 있다. 다만 리그 오브 레전드는 5 대 5 팀 기반, 높은 변동성, 패치에 따른 메타 변화가 겹치는 만큼, 장기간에 걸친 적응과 팀 단위 전략 수립이 필수적인 게임으로 꼽힌다.
특히 이번 대결이 성사될 경우, AI 모델을 단순한 봇 수준을 넘어 팀 전략 설계, 라인전과 오브젝트 컨트롤, 실시간 의사소통에까지 확장할 수 있을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인간 프로팀과 유사한 수준의 커뮤니케이션과 역할 분담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단일 에이전트가 다섯 챔피언을 동시에 조작할지, 다중 에이전트가 협력하는 구조로 구현할지에 따라 기술적 난도가 달라질 수 있다.
시장 관점에서 보면 e스포츠는 AI 적용 파급력이 큰 분야로 꼽힌다. 프로 수준 AI 스크림 파트너가 구현되면 팀 운영 효율을 높이고 전략 연구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고, 일반 이용자에게는 개인 실력에 맞춰 적응하는 AI 코치나 연습 상대를 제공하는 서비스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게임사는 이미 고급 봇과 분석 도구를 도입해 매치메이킹 품질과 밸런스를 관리하고 있어, 차세대 범용 AI가 결합하면 게임 설계와 운영 방식 자체가 바뀔 여지도 있다.
글로벌 AI 업체 간 경쟁 구도도 변수다. 오픈AI, 구글 딥마인드 등은 이전부터 다양한 게임을 기반으로 한 강화학습 연구를 진행해 왔고, 일부 결과는 논문과 대회 형태로 공개했다. 머스크의 xAI가 그록5를 전면에 내세워 e스포츠 영역에서 성과를 보여줄 경우, 다른 AI 기업들도 유사한 데모나 대결 이벤트를 마련해 기술력을 부각하려 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게임은 일반 이용자가 성능 차이를 직관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영역이어서, AI 브랜드 인지도 경쟁의 무대로 활용될 소지도 높다.
한편 관심이 커질수록 경기 공정성과 규정 문제도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AI에게 허용되는 정보 범위, 입력 지연 시간, 하드웨어 성능 등 세부 조건을 어떻게 설정하고 검증할지에 따라 승부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e스포츠 대회 규정상 비인간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이벤트를 어떻게 포지셔닝할지, 상업적 프로모션과 기술 검증을 어디까지 구분할지도 논의 과제다.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제안이 현실화할 경우, 게임과 e스포츠가 범용 AI 기술 수준을 가늠하는 공개 시험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프로 게이머와 동등한 조건에서 AI가 어떤 한계를 드러내는지에 따라, 차세대 모델 개발 방향과 인간과 AI 협업 방식에 대한 연구도 영향을 받을 수 있어서다. 산업계는 머스크의 제안이 이벤트성 이벤트에 그칠지, e스포츠와 AI가 결합한 새로운 경쟁 무대를 여는 신호탄이 될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