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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데이터로 지역 유통 혁신…정부, TV홈쇼핑 실증으로 판로 실험

신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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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기반 커머스가 지역 유통 구조를 바꾸는 시험대에 올랐다. 정부가 TV홈쇼핑 채널을 전국 단위 디지털 유통망으로 활용해 지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판로를 넓히는 실증 사업에 착수했다. 판매 데이터와 방송 송출 인프라, 비대면 커머스 운영 역량을 한데 묶어 지역 특산품의 온라인 진출 효율을 높이는 모델을 검증하겠다는 구상이다. 유통·미디어 융합이 본격화된 가운데, 이번 실험이 지역경제 활성화와 디지털 전환의 분기점이 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와 우정사업본부는 9일부터 내년 1월 말까지 약 두 달간 지역 중소·소상공인 21개 우수 제품을 TV홈쇼핑 7개 채널을 통해 정식 판매한다고 밝혔다. 사업 대상은 경북 사과와 전남 약과를 비롯해 전복 등 지역 특산 농수축산물과 가공식품으로 구성됐다. 방송 인프라와 물류, 마케팅을 연계한 공공 지원 성격의 시범 플랫폼으로, 디지털 홈쇼핑 생태계에 지역 사업자를 직접 연결하는 구조다.

이번 사업은 경북, 전남 등 지방자치단체와 GS리테일 TV채널, CJ ENM 쇼핑 채널, 현대홈쇼핑, 우리홈쇼핑, NS쇼핑, 홈앤쇼핑, 공영홈쇼핑 등 7개 TV홈쇼핑 사업자가 공동 참여해 추진됐다. 방송미디어통신위와 우정사업본부는 그간 지역 소상공인과 TV홈쇼핑사의 상생 방안을 논의해 왔고, 그 결과로 2개월 편성의 지역 판로 특화 프로그램 도약 마켓을 기획했다. 도약 마켓은 정규 편성 시간에 홈쇼핑 방송 형태로 송출돼 실시간 주문과 매출 데이터를 수집하는 구조다.

 

기술적 관점에서 보면 이번 사업은 방송 송출망과 디지털 커머스 운영 시스템을 결합한 실시간 데이터 기반 유통 실증에 가깝다. 홈쇼핑 채널은 주문 콜센터, 모바일 앱, 웹 기반 주문 시스템을 동시에 운영해 시청자 반응과 구매 전환율, 시간대별 매출 등 정량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지역 상품의 패키지 구성, 가격 전략, 방송 시간대 효과 등도 데이터로 축적돼 향후 인공지능 기반 수요 예측이나 추천 알고리즘에 활용될 여지가 있다. 특히 전국 단위 송출을 한 번에 확보하기 어려운 영세 사업자에게는 대형 커머스 플랫폼 수준의 실시간 판매 리포트를 경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업 구조는 지자체 추천과 방송사 심사를 결합한 단계적 선별 방식이다. 경북과 전남이 먼저 지역 우수 상품 94개를 추천했고, 이후 상품설명회를 통해 각 홈쇼핑사가 상품성, 공급 안정성, 생산역량 등을 종합 평가했다. 심사 결과 21개 제품이 최종 방송 편성 대상으로 선정됐다. 여기에는 단순 송출을 넘어 사전 기획과 스토리텔링 구성, 방송용 콘텐츠 제작 방식에 대한 자문이 포함된다.

 

선정 기업에는 홈쇼핑 상품기획자와 전문 인력의 맞춤형 컨설팅이 제공됐다. 패키지 구성, 리패키징 디자인, 방송용 설명 문구와 시연 방식 등 디지털 유통에 특화된 요소를 개선하는 작업이다. 오프라인 위주였던 지역 특산품 판매 방식을 방송·온라인 친화적으로 전환하는 일종의 디지털 커머스 온보딩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업은 대형 플랫폼 운영자가 축적해 온 판매 노하우를 직접 전수받고, 이후 자체 온라인몰이나 타 플랫폼 진출에 참고할 수 있는 운영 데이터를 확보하게 된다.

 

시장 측면에서 이번 실증은 비대면 소비가 평준화된 상황에서 지역 특산품의 브랜딩과 판로를 한 번에 해결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기존에는 산지 직송 플랫폼, 공공 온라인 몰, 소셜커머스 등이 개별적으로 운영돼 데이터가 분절되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TV홈쇼핑은 전국 도달 범위를 가진 방송 채널과 디지털 주문 시스템을 동시에 활용해 단기간에 집중 노출과 매출 검증을 수행할 수 있다. 특히 연말 성수기와 겹치는 편성으로 선물 수요와 집콕 소비를 겨냥한 전략도 병행되는 셈이다.

 

글로벌 차원에서 보면 방송과 커머스 결합은 라이브 커머스와 쇼핑 TV로 이미 확산된 흐름이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OTT 플랫폼과 연계된 인터랙티브 쇼핑 TV가 실험되고 있고, 중국은 모바일 라이브 커머스를 통해 농촌 제품의 도시 판매를 대규모로 지원하고 있다. 중국의 농촌 라이브 커머스는 빅데이터 기반 추천 알고리즘과 실시간 스트리밍 기술을 결합해 지역 농가의 수출까지 연결하는 모델로 발전했다. 한국의 이번 시범사업은 기존 TV 기반 홈쇼핑 인프라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플랫폼 구조는 다르지만, 목적 측면에서는 농수산물과 지역 상품의 디지털 전환이라는 유사한 방향을 지향한다.

 

정책 측면에서는 방송 기반 판로 지원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공공 지원 모델을 시험한다는 의미가 크다. 방송미디어통신위는 방송 인프라를 공공재적 성격으로 인식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와 상생 구조에 활용하는 방향을 제시해 왔다. 우정사업본부는 물류와 배송 네트워크를 갖춘 기관으로, 향후에는 주문부터 배송까지 전 주기 협력이 논의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방송 편성권과 민간 사업자의 수익 구조, 공공 지원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지에 대한 세부 기준은 추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이번 시범사업에서 수집되는 판매량, 재구매율, 고객 반응, 시간대별 매출 데이터는 향후 방송 기반 판로 지원 모델을 설계하는 기초 자료가 될 전망이다. 방송미디어통신위와 우정사업본부는 사업 종료 후 성과를 분석해 사업 구조를 개선하고, 지원 대상 지역과 참여 기업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TV홈쇼핑사 역시 지역 특화 상품을 발굴해 자체 편성에 반영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는 공공 지원과 민간 비즈니스가 교차하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시범사업이 디지털 유통 전환에서 소외되기 쉬운 지역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방송·데이터 기반 지원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다만 일회성 편성에 머물지 않고,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한 후속 지원과 온라인 채널 다각화까지 연결돼야 실질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계는 방송을 통한 판로 확대 실험이 실제 시장에 안착해 지역 유통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될지 지켜보고 있다.

신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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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우정사업본부#tv홈쇼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