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5천500억달러로 트럼프 산업단지 조성 구상”…손정의, 미 전역 AI·반도체 인프라 협력 모색 파장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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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4일, 미국(USA)에서 일본(Japan) 소프트뱅크그룹의 손정의 회장이 추진 중인 대규모 대미 투자 계획의 윤곽이 외신을 통해 드러났다. 손 회장은 일본의 5천500억달러 규모 대미 현금 투자를 활용해 미국 전역 연방정부 소유 토지에 인공지능(AI)·반도체 인프라를 집적한 이른바 ‘트럼프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구상을 미국 행정부와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논의는 미·일 간 기술·산업 협력 심화라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거대 산업 단지 조성이 지역 경제와 글로벌 공급망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손 회장은 최근 수개월 동안 백악관과 미국 상무부를 상대로 이 구상을 적극 타진해 왔다. 현지시각 기준 지난봄부터 이어진 회의에서 그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등 행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애리조나 사막에 1조달러 규모의 산업 도시를 건설하는 방안을 처음 제안했다. 당시 손 회장은 이 안을 중국(China) 선전(深圳)의 대규모 산업 클러스터를 모델로 한 ‘미국판 선전’으로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정의, 5천500억달러 대미 투자로 ‘트럼프 산업단지’ 구상…AI·반도체 인프라 부각
손정의, 5천500억달러 대미 투자로 ‘트럼프 산업단지’ 구상…AI·반도체 인프라 부각

소식통들에 따르면 초기 제안은 이후 여러 차례 구조 조정을 거쳤다. 애리조나 사막에 단일 초대형 산업 도시를 짓는 방안에서, 현재는 미국 연방정부 소유 토지 여러 곳에 ‘트럼프 산업단지’를 분산 조성하는 방향으로 수정된 상태다. 검토 중인 안에는 광섬유 케이블과 데이터센터 장비 설치, 그리고 AI 칩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 단지 건설이 핵심으로 포함돼 있다.

 

WSJ는 일본 기술 기업들이 이 과정에서 기술과 인프라 구축 역량을 제공하고, 단지가 완공된 이후 시설 소유권은 미국 연방정부에 귀속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고 전했다. 프로젝트는 소프트뱅크 내부에서 ‘프로젝트 크리스털 랜드’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지난 6개월 동안 세부 내용이 반복 조정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재원 조달은 일본 정부가 미국에 제공하기로 한 신규 대미 투자 5천500억달러가 기반이 된다. WSJ와 소식통들에 따르면 이 자금의 구체적 사용처 결정 권한은 미국 측에 있으며, 투자금 회수 이후 발생하는 이익은 미국이 90%, 일본이 10%를 가져가는 수익 배분 방식에 미·일 양국이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조치는 단순 투자 유치 수준을 넘어, 미국 내 전략 산업 인프라를 일본 자본과 기술로 보강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손 회장이 제시한 산업단지 구상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손 회장의 설명을 받은 뒤 지지 의사를 내비쳤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트럼프 산업단지’라는 명칭도 이런 정치적 후원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내에서는 AI와 반도체를 ‘국가 안보 핵심 인프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강해, 백악관과 상무부가 해당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는 배경이기도 하다.

 

WSJ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은 이미 지난 10월, 원자력발전소와 에너지, AI 인프라 투자 등을 포함한 잠재적 투자 항목 목록을 제시했다. 이 목록의 구성 요소 상당 부분이 손 회장이 그린 ‘프로젝트 크리스털 랜드’ 구상과 겹치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는 미국이 에너지·디지털 인프라 전반을 재편하면서, 동맹국 자본과 기술을 끌어들이려는 전략 변화 신호로 해석된다.

 

이번 구상은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은 반도체와 AI 분야에서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강화하는 한편, 동맹국과의 협력을 확대해 생산 기반을 자국 내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일본 역시 반도체와 첨단 기술을 전략 자산으로 재정의하며 미국과의 연계를 강화해 왔다. 일본 기업들이 미국 내 AI 칩 공장과 데이터센터 인프라 구축에 깊이 관여할 경우, 향후 기술 표준과 공급망 주도권 경쟁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초대형 프로젝트가 현실화할 경우, 미국 내 지방 경제와 고용, 인프라 투자에 상당한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 광섬유와 데이터센터, AI 칩 생산시설이 결합된 산업단지는 특정 지역을 새로운 첨단 산업 허브로 재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막대한 재정·토지·환경 이슈가 뒤따를 것으로 보여, 해당 지역 정치권과 주민의 반응이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다만 WSJ는 손 회장의 ‘트럼프 산업단지’ 구상이 실제 프로젝트로 이어질지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미국 연방정부 차원의 토지 제공과 규제 완화, 환경 영향 평가, 의회의 예산·감독 문제 등 넘어야 할 절차가 많기 때문이다. 일본 내에서도 5천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에 대한 정치·여론의 검증이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 회장의 제안은 AI와 반도체를 축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미·일 산업 협력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미국과 일본이 어떤 세부 합의를 도출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구도와 동맹국 간 공급망 협력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 구상이 실제 계약과 착공으로 이어질지, 그리고 미·일 관계 및 세계 첨단 산업 지형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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