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반도체로 K엔비디아 육성…2030년 유니콘 5개 겨냥
인공지능 반도체가 국내 디지털 주권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면서 정부가 이른바 K엔비디아 전략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2030년까지 글로벌 AI반도체 유니콘 기업 5개, 기술 선도 강소기업 5개를 키우고,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에서 국산 NPU를 실증해 성능 신뢰를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세액공제와 대규모 펀드를 동원해 투자 환경을 정비하고 공공 수요를 마중물로 활용, 엔비디아 중심으로 굳어진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의 구조를 흔들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로 떠오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7일 제2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 AI반도체 산업 도약 전략을 심의·의결하고, 국산 AI반도체를 축으로 한 컴퓨팅 생태계 전환 방안을 제시했다. 현재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은 그래픽처리장치 GPU를 앞세운 엔비디아가 약 90퍼센트 점유율을 차지하는 독점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초거대 AI 학습용 GPU는 전력 소모와 운영비용이 막대해, 서비스 확산 단계에서는 낮은 전력과 비용을 강점으로 하는 신경망처리장치 NPU의 성장 여지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 전략의 기술적 중심축은 국산 NPU 성능 고도화다. 독자 거대언어모델 LLM에 최적화된 구조와 소프트웨어 풀스택을 결합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수직 통합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2027년까지 155페타플롭스 규모의 테스트베드를 구축해 칩 검증과 상용화 시험 환경을 제공한다. 페타플롭스는 초당 10의 15제곱 회 연산을 뜻하는 컴퓨팅 성능 단위로, 대규모 AI 모델 학습과 추론의 처리 능력을 가늠하는 기준 지표로 쓰인다.
성능 신뢰성 확보를 위한 지표 체계도 병행한다. 수요·공급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 성능지표 K퍼프를 도입해, 추론 속도, 전력당 처리량, 지연시간 등 주요 지표를 통일된 기준으로 측정하고 공개하는 방식이다. 업계에서는 이 지표가 독립 벤치마크에 가까운 역할을 할 경우, 국산 NPU에 대한 성능 우려를 줄이는 동시에 글로벌 벤더와의 비교 평가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차세대 구조를 겨냥한 피지컬 AI 특화 NPU 개발도 추진된다. 디바이스 자체에서 대형 AI 모델 운용과 강화학습을 지원하는 아키텍처를 설계해, 로봇·차량·산업기계 등 현장 장비에 직접 탑재하는 온디바이스 AI 경쟁력을 선점하겠다는 방향이다. 메모리 안에서 연산을 수행하는 PIM 반도체나, 인간 뇌의 시냅스 구조를 모사해 초저전력을 구현하는 뉴로모픽 반도체 같은 후속 기술도 연구와 사업화를 병행해 추진한다. 이런 기술은 데이터 이동에 따른 병목과 전력 소모를 줄여,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엣지와 사물인터넷 단의 효율을 높이는 대안으로 꼽힌다.
컴퓨팅 인프라 측면에서는 국산 AI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대규모 컴퓨팅 서비스 제공이 목표다. 이를 위해 칩 간 고속 연결을 담당하는 초고속 인터페이스, 패키징 등 하드웨어 기술을 확보하는 한편, 엔비디아의 쿠다에 대응하는 소프트웨어 풀스택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낸다. 쿠다는 GPU를 제어하고 AI 프레임워크를 최적화하는 개발 환경으로, 생태계 락인 효과를 통해 엔비디아의 독점을 뒷받침해왔다. 국산 NPU 전용 개발 키트와 라이브러리, 컴파일러를 포함한 풀스택이 갖춰져야 실제 서비스 사업자들이 칩 전환을 검토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수요 창출과 검증·실증은 공공 부문이 선도한다. 정부는 국산 NPU를 공공 행정과 치안, 국방, 스마트시티 분야에 우선 적용하는 K NPU 공공선도 7대 과제를 내년부터 추진한다. 행정 업무에 필요한 AI 기반 문서 처리와 상담, 치안·국방에서의 영상 분석과 상황 인식, AI CCTV 전환, 도시 단위 온디바이스 AI 실증 등이 대표 과제다. 공공 프로젝트를 실제 성능 검증 무대로 활용해 레퍼런스를 쌓고, 이후 민간 클라우드와 서비스 영역으로 확산하겠다는 로드맵이다.
민·관 합작 형태로 추진 중인 국가 AI 컴퓨팅 센터도 국산 칩 실증 거점 역할을 맡는다. 센터 인프라에 NPU 신제품을 순차 도입해 클라우드, 검색, 생성형 AI 서비스 등을 시험 운용하고, 성능과 비용 구조를 데이터로 축적한다. 동시에 자동차, 사물인터넷과 가전, 기계·로봇, 방산 등 4대 주력 산업군에서는 K 온디바이스 AI 반도체 상용화 프로젝트를 추진해, 차량 제어와 자율주행 보조, 스마트 가전 제어, 생산설비 모니터링, 무기체계 지능화 등 각 산업 특화 분야에 맞춘 칩 설계와 양산을 연계한다.
투자 측면에서는 국민성장펀드를 활용한 K엔비디아 프로젝트가 핵심 도구로 제시됐다. 차세대 제품 개발과 양산 체제로의 전환 등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구간에 투·융자를 결합한 금융 지원을 제공해, 설계 단계에 머무르는 스타트업을 실제 양산 기업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초기 성장 기업에는 장기 지분 투자 방식으로 위험을 분산하면서도 성장 과실을 공유하는 구조를 꾀한다.
세제 측면에서도 우대 장치를 마련한다. NPU 기반 AI 컴퓨팅 인프라와 설비에 대한 통합 투자에 대해 세액공제를 신설해, 데이터센터와 대형 서비스 사업자의 국산 칩 도입 부담을 낮추는 방식이다. 업계에서는 이 조치가 칩 가격·성능만 놓고 단기 비교를 하던 도입 의사결정을, 총소유비용 관점에서 재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정부는 이 같은 정책 조합을 통해 2030년까지 글로벌 AI반도체 유니콘 5개, 기술 선도 강소기업 5개를 확보한다는 정량 목표를 제시했다. 국내 팹리스와 시스템 반도체 기업들이 AI 특화 칩을 내세워 해외 시장에 진출하고, 일부는 시가총액 10억 달러 이상 유니콘 지위를 획득하는 시나리오를 상정한 셈이다. 동시에 기존 메모리 중심 K 반도체 전략을 시스템과 AI 반도체로 확장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입지를 강화하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
정책 추진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과기부총리가 주재하는 AI반도체 민·관 전략협의회도 내년 상반기 출범을 앞두고 있다. 이 협의회는 기술 로드맵 점검, 투자·인력 수급, 글로벌 협력 전략 등을 포괄하는 범국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된다. 미국과 유럽, 중국이 각각 데이터센터용 AI 칩과 온디바이스 칩에 대규모 보조금과 인센티브를 쏟아붓는 상황에서, 국내 전략을 유연하게 조정하고 기업 수요를 정책에 반영하는 창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배경훈 부총리는 AI반도체 육성을 AI G3 달성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규정하면서, 독자 AI 모델 발전과 국산 AI반도체 상용화가 맞물릴 경우 K 반도체의 두 번째 도약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국산 칩의 실제 성능과 소프트웨어 생태계 성숙도, 글로벌 파트너십 속도 등이 전략의 성패를 가르는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AI반도체 도약 전략이 엔비디아 중심의 시장 구조에 어느 정도 균열을 낼 수 있을지, 그리고 국내 기업이 그 틈을 실질적인 사업 기회로 전환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