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집배원 데이터로 빈집 찾는다…우본 시범사업 시작
우체국 집배원이 수집한 현장 데이터가 전국 빈집 관리 체계 고도화에 투입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가 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와 손잡고 빈집확인등기 우편서비스 시범사업을 시작하면서, 디지털 행정과 오프라인 공공 인프라를 연계한 새로운 도시 데이터 수집 모델이 주목받는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업이 향후 스마트시티, 부동산 데이터 플랫폼, 지능형 행정 시스템 확산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우정사업본부는 3일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한국부동산원과 빈집확인등기 우편서비스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경기 광주, 경북 김천 지역에서 시범사업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올해 대상은 두 지역에 위치한 추정 빈집 579호이며, 사업 결과를 토대로 내년에는 지방자치단체 4∼5곳을 추가 선정해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기존 빈집 실태조사는 전기와 상수도 사용량 등 간접 데이터를 기반으로 빈집이 의심되는 주택을 추려 조사원이 직접 방문해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데이터 기반 추정임에도 실제 현장 판정률은 평균 51%에 그쳐, 절반 가까운 물량에서 불필요한 현장 조사 비용과 시간이 발생하는 비효율 구조가 지적돼 왔다. 전력·수도 데이터만으로는 일시 부재, 계절적 거주 등 다양한 생활 패턴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드러났다.
새로 도입되는 빈집확인등기 서비스는 디지털 행정 데이터와 집배원의 오프라인 관찰 정보를 결합하는 것이 핵심이다. 실태조사를 수행하는 한국부동산원이 추정 빈집 대상에 확인등기를 발송하면, 지역 사정에 밝은 우체국 집배원이 등기 배달 과정에서 해당 주택을 직접 확인한다. 이때 집배원은 주택 외관 상태, 거주자 유무 징후, 우편함 사용 여부 등 세부 항목으로 구성된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한국부동산원에 회신한다.
집배원이 축적한 현장 데이터는 이후 한국부동산원이 진행하는 정밀 현장 조사의 선별 기준으로 활용된다. 디지털 행정 시스템과 연계하면, 전기·수도 사용량과 우편 배달 기록, 현장 체크리스트 결과를 통합 분석해 빈집 가능성이 높은 물건을 우선 관리 대상으로 분류하는 알고리즘 구축도 가능해진다. 관계 기관들은 시범사업 성과를 분석해 전국 단위 서비스 도입 여부와 데이터 연계 방식, 시스템 표준화를 검토할 방침이다.
특히 이번 모델은 스마트시티와 도시 재생, 농어촌 주거 복지 정책 전반에 파급력을 미칠 수 있는 데이터 인프라로 평가된다. 도시 지역은 국토교통부, 농촌은 농림축산식품부, 어촌은 해양수산부가 각각 주거 정책을 담당하고 있어, 빈집 데이터 정확도가 정책 설계의 출발점이 된다. 빈집 소유권 정리, 리모델링 지원, 고령자 주거 이전, 청년 주거 공급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이 실제 수요와 맞물리기 위해서는 위치, 규모, 노후도, 상시·계절 거주 여부 등 세부 정보가 필요하다.
글로벌 차원에서 보면 도시 데이터 수집에는 위성영상, 드론, 사물인터넷 센서 등 첨단 기술이 동원되고 있으나, 실제 거주 여부와 생활 패턴을 판별하는 데는 현장 기반 정보의 비중이 여전히 크다. 유럽과 일본 일부 지방자치단체도 우편망과 지역 코디네이터를 활용해 고령자 안부 확인과 빈집 관리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국 3300여 개 우체국과 4만 3000명 수준의 집배 인력을 보유하고 있어, 디지털 행정 시스템과 결합할 경우 독자적인 공공 데이터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책 측면에서는 빈집 실태 정확도가 향후 규제와 지원 정책의 세분화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빈집으로 확인된 주택에 대해서는 안전 점검, 철거·정비 명령, 리모델링 지원, 공공임대 전환 등 차등적인 정책 수단을 적용할 수 있고, 비어 있지 않은 주택 범위는 별도의 관리 영역으로 분리해 행정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주민등록 전입 정보, 세금 정보, 전력·통신 사용량 등과 빈집 데이터를 연계하는 통합 관리 체계가 논의될 수 있어,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활용 간 균형을 맞추는 제도 설계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우정사업본부는 그간 우편망을 활용한 공공서비스를 점진적으로 확장해 왔다. 고립 위험이 큰 1인 고령 가구를 대상으로 한 안부 확인 서비스, 재난·재해 시 긴급 안내 고지 등에서 우체국과 집배원 네트워크가 활용된 바 있다. 이번 빈집확인등기 서비스는 이러한 사회 안전망 역할을 도시·부동산 데이터 영역으로 확장한 사례에 해당한다. 향후에는 집배원이 수집하는 데이터를 디지털 플랫폼에 실시간 연동해, 행정기관과 지자체가 즉각적으로 활용하는 구조로 고도화할 여지도 남아 있다.
곽병진 우정사업본부장 직무대리는 빈집을 효과적으로 발굴해 정비사업을 원활히 추진하고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며, 전국 우체국과 임직원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공공서비스 확대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이상주 국토교통부 국토도시실장은 빈집 정책 수립에서 정확한 현황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빈집확인등기 우편서비스와 전입세대 정보 연계 등을 통해 전국 빈집을 빠짐없이 파악·관리해 국민 주거 여건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산업계와 정책 당국은 이번 시범사업이 디지털 행정과 물리적 네트워크를 결합한 데이터 수집 모델로 안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축적된 빈집 데이터가 도시 재생과 정밀 주거 정책 수립의 촉매제로 작동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