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DMZ 출입 통제권은 유엔사"…김현종 1차장 방북선 방문 허가 두고 한미·정부 갈등 격화

문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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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 출입 통제권을 둘러싼 한반도 안보 현안과 영토 주권 논란이 유엔군사령부와 한국 정부 사이에서 정면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유엔군사령부가 한 차례 불허했던 김현종 국가안보실 제1차장의 DMZ 출입을 허가하면서도, 동시에 DMZ 관할권과 출입 통제 권한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유엔군사령부는 17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김현종 제1차장의 비무장지대 방문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유엔군사령부는 김 제1차장이 DMZ에서 북한군의 최신 동향을 보고받고 한국 측 대응 조치들을 평가했으며, 정전협정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유엔군 군사정전위원회와 우발적 충돌 방지 방안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현장에는 주한 미8군 사령관인 조셉 힐버트 중장이 동행했다.

이보다 앞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김 제1차장의 DMZ 출입이 유엔군사령부에 의해 불허됐다며, 이를 영토 주권 문제와 연결해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정치권과 여론에서 유엔군사령부의 권한 행사 범위를 두고 논쟁이 확산되는 가운데, 유엔군사령부가 기류 변화를 보이며 김 제1차장의 출입을 허가하고 그 과정을 대외적으로 알린 것으로 풀이된다.

 

유엔군사령부는 김 제1차장의 방문 배경과 별개로 DMZ 관할권 문제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유엔군사령부는 이날 오전 홈페이지에 군사정전위원회의 권한과 절차에 대한 성명을 게시하고 "군사분계선 남쪽 DMZ 구역의 민사 행정 및 구제사업은 유엔군사령관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이어 DMZ 출입 통제 권한이 유엔군사령부에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또 유엔군사령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 전념하고 있으며,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군사력 간 오판 위험을 줄이기 위한 조치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했다. 군사적 충돌 방지와 정전 체제 유지를 앞세워 DMZ에 대한 통제권 주장을 정당화한 셈이다.

 

최근 국회에서 추진 중인 DMZ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법률 제정 움직임도 유엔군사령부와의 갈등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 법안은 비군사적 목적의 DMZ 출입을 한국 정부가 승인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유엔군사령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사실상 해당 입법에 반대하는 입장을 드러냈다.

 

통일부는 유엔군사령부와 정면으로 다른 해석을 내놨다. 통일부 관계자는 "정전협정은 서문에 규정한 바와 같이 군사적 성격의 협정으로 DMZ의 평화적 이용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관계부처 협조 하에서 유엔군사령부와의 협의를 추진하고 국회 입법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혀, 정부 차원에서 DMZ법 추진을 계속 뒷받침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유엔군사령부와 통일부는 이미 DMZ 구역에 대한 민간인 출입 통제 권한을 놓고 갈등을 노출해 왔다. 그러나 김현종 제1차장의 출입 문제를 계기로 갈등이 한층 가시화됐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특히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영토 주권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데다, 유엔군사령부가 군사정전위원회의 권한을 공식 성명 형식으로 재확인하면서 양측의 입장 차가 더욱 뚜렷해졌다는 분석이다.

 

정치권에서는 DMZ법을 둘러싼 여야 공방과 함께, 유엔군사령부의 법적 지위와 권한 범위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한미 동맹 차원의 안보 협력 구조 속에서 DMZ 출입 통제 권한 문제를 어떻게 조정할지, 또 국회 입법이 정전 체제와 어떤 긴장을 빚을지에 따라 향후 논의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회는 DMZ의 평화적 이용과 안보 위험 최소화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방안을 놓고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유엔군사령부가 정전협정 해석과 DMZ 관리 원칙을 둘러싸고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권한 조정과 제도 개선 방향을 둘러싼 공방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문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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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사령부#김현종국가안보실제1차장#정동영통일부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