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현지생산 여파 본격화”…한국 車수출 감소 전환→미국 시장 전략 재편 분수령
올해 한국 자동차 산업의 연간 신차 수출 대수가 5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해외 현지생산 체제가 확대되는 가운데, 한국 자동차 수출의 최대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 시장에서의 물량 조정과 관세 부담이 겹치며 수출 흐름에 분기점이 형성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미국 보호무역 기조가 장기화하고 수요 둔화까지 더해질 경우, 내년에도 수출 감소 압력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계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는 올해 연간 자동차 신차 수출 대수를 271만∼272만대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2024년 278만2천612대와 비교해 약 2.3∼2.6% 줄어든 수준으로, 코로나19 충격이 컸던 2020년 이후 처음으로 연간 수출 대수가 감소하는 국면이다. 1∼10월 누적 수출은 225만4천777대를 기록했으며, 남은 두 달 동안 월평균 약 23만대가량이 해외로 선적될 것으로 협회는 내다보고 있다.

한국 자동차 수출은 2019년 240만1천382대에서 2020년 188만6천683대로 크게 감소한 뒤, 2021년 204만572대, 2022년 230만333대, 2023년 276만6천271대로 매해 가파른 회복 곡선을 그려 왔다. 이런 흐름이 2024년에 멈췄다는 점에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전기차 전환, 보호무역주의 심화가 한국 자동차 수출 구조에 구조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다만 통계의 세부 구성을 들여다보면, 수출 대수의 감소가 곧바로 수출액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는 모습이다. KAMA 집계에 따르면 1∼11월 자동차 수출액은 660억4천만달러로 사상 최대치 경신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액 통계에는 신차뿐 아니라 중고차까지 포함돼 신차 대수 통계와 흐름이 어긋날 수 있다. KAMA 관계자는 올해 자동차 수출액에서 중고차 비중이 10∼11% 수준까지 높아졌다며, 신차 수출이 주춤하더라도 중고차 수출이 하방을 받쳐주는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설명했다.
수출 대수 측면에서 그래프를 꺾어 내린 핵심 변수는 미국 시장이다. 올해 1∼10월 대미 자동차 수출은 110만7천460대로 전체 수출의 49.1%를 차지했으나,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9만5천92대 줄어들어 7.9% 감소했다. 유럽연합으로의 수출은 31만6천351대로 7.7% 증가했고, 중남미는 10만7천542대로 13.6% 늘었으며, 아프리카는 2만9천110대로 25.5% 확대되는 등 일부 지역에서는 증가세가 관측됐다. 그러나 미국향 감소폭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는 대미 수출 감소 배경으로 현대차그룹의 미국 현지생산 확대를 지목한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3월 미국 내 세 번째 생산거점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준공식을 열고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10월까지 이 공장에서 출고된 물량은 5만3천194대로 집계됐다. 그룹은 해당 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을 기존 30만대에서 50만대까지 확대하는 계획을 갖고 있어, 중장기적으로 미국 내 현지 생산 비중은 한층 더 커질 전망이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완성차를 선적하던 물량이 점차 현지 조달 구조로 전환되는 셈이다.
문제는 생산 거점 이동과 함께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가 수출 전략에 복합적인 부담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 간 관세·무역 합의에 따라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율은 종전 25%에서 15%로 낮아졌으나, 무관세 체제가 유지되던 과거와 견주면 기업 입장에서는 원가 구조에 상당한 압력이 더해진 상황이다. 관세 인상분을 전량 흡수할 경우 수익성이 훼손되고, 이를 소비자가격에 반영하면 수요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중의 우려가 공존한다.
현대차와 기아가 수익성 유지를 위해 미국 판매가격을 상향 조정할 경우, 가격 민감도가 높은 차급을 중심으로 수요가 줄고, 이는 다시 수출 물량 축소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현대차그룹이 일정 부분 영업이익 감소를 감수하는 방식으로 수출 대수 감소 폭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면서도, 내년에는 관세 부담을 소비자에게 일부 전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대미 수출 물량의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수요 측면에서도 미국 자동차 시장의 환경은 한층 거칠어지는 분위기다. 영국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데이터는 2025년 미국 승용차 및 소형 상용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0.7% 감소한 1천506만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고금리 기조의 잔존, 소비심리 위축, 전기차 보조금 축소 논의 등 복합 요인이 신차 구매 여력을 억누를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한국 업체 입장에서는 관세 부담과 수요 둔화가 동시에 작용하는 ‘이중 하방 압력’ 속에서 상품 경쟁력과 가격 전략을 정교하게 조율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전문가들은 미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자동차 수출 구조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유럽연합과 중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 수출 증가세가 관찰되는 만큼,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소형 상용차 등 세분 시장을 겨냥한 맞춤형 라인업과 금융·서비스 패키지를 강화해 수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제기된다. 동시에 미국 현지생산 확대가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 잡는 만큼, 한미 간 통상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면서 연구개발, 부품 조달, 생산·물류 효율화까지 포함하는 종합 전략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작업이 요구되고 있다.
중고차 수출 비중 확대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현상을 드러낸다는 평가도 있다. 내수에서 회수된 차량이 아프리카와 중동, 중남미 등으로 재판매되면서 신흥국 교통 인프라 확충에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수출 구조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품질 관리, 잔존가치 제고, 친환경 규제 대응 등 후속 과제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된다.
관세와 보호무역, 현지생산 확대, 수요 둔화가 교차하는 ‘다층 위기’ 속에서 한국 자동차 산업의 수출 전략은 기로에 서 있다. 단기적으로는 가격·물량 조절을 통해 충격을 흡수하되, 중장기적으로는 지역·차급·에너지 파워트레인에 걸친 포트폴리오 재편을 가속하는 방향으로 산업 전략이 조정될 것이라는 전망에 업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