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레버리지 대출, 은행 손에 다시 맡긴다”…미국 은행당국 규제 해제, 그림자 금융 리스크 재조정 주목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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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5일, 미국(USA) 워싱턴에서 미국 은행 규제당국이 금융위기 이후 10여 년간 유지해 온 레버리지 대출 제한 지침을 공식 폐기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저신용 기업 자금조달 통로를 다시 은행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로 평가되며, 급팽창한 비은행권 사모대출 시장과 글로벌 금융 안정성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낳고 있다. 레버리지 대출 규제가 어떻게 금융 시스템 구조를 바꿔왔는지에 대한 논쟁이 재점화되는 모습이다.

 

현지시각 기준 5일 오전,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와 통화감독청(OCC)는 공동 성명을 통해 2013년 도입된 레버리지 대출 감독 지침을 폐기한다고 밝혔다. 두 기관은 해당 지침이 레버리지 대출을 일반 기업대출과 다른 잣대로 규제하면서 은행들의 위험 평가와 관리에 오히려 제약을 줬다고 설명했다. 당국은 규제가 지나치게 엄격해 은행의 레버리지 대출 참여를 위축시켰고, 그 결과 저신용 기업에 대한 대출 수요가 은행이 아닌 비은행 금융회사로 이동했다고 진단했다.

美 은행당국, 레버리지 대출 규제 11년 만에 해제…비은행권 급팽창 역효과 지적
美 은행당국, 레버리지 대출 규제 11년 만에 해제…비은행권 급팽창 역효과 지적

레버리지 대출은 통상 부채비율이 높거나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을 상대로 제공되는 고위험 기업대출을 의미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규제당국은 시스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이 부문을 별도 감독 대상으로 묶어 관리해 왔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기였던 2013년, 미국 은행 감독당국은 대형 은행들의 고레버리지 기업 인수금융과 차환 대출이 위기 재연을 부를 수 있다고 보고 레버리지 대출에 상한선과 엄격한 심사 기준을 부과하는 지침을 도입했다.

 

하지만 규제 강화 이후 시장 지형은 급속히 변했다. FDIC와 OCC에 따르면 레버리지 대출 규제 유지 기간 동안 규제 대상 은행들의 레버리지 대출 시장 점유율은 크게 줄어든 반면, 사모펀드 계열 비은행 금융회사들이 이 공백을 빠르게 메웠다.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아레스매니지먼트 등 자산운용사와 사모펀드가 이끄는 사모대출 시장이 저신용 기업의 주요 자금줄로 부상했다.

 

사모대출은 은행 대출에 비해 정보 공개 수준과 감독 강도가 낮아 흔히 ‘그림자 금융’으로 분류된다. 예금자 보호 제도나 중앙은행의 긴급 유동성 지원 같은 안전장치가 부족해, 충격이 발생할 경우 리스크가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비판이 월가와 규제 당국 주변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FDIC와 OCC는 이번에 레버리지 대출 지침을 거둬들이며, 과거 규제가 비은행권의 대출 비중을 키워 규제 사각지대를 확대하는 역효과를 낳았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두 기관은 앞으로 레버리지 대출을 별도 ‘문제 대출’로 보지 않고, 은행의 내부 위험관리 원칙과 자본규제 틀 안에서 다른 기업대출과 유사한 방식으로 취급할 수 있도록 감독 방향을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규제를 풀어 은행이 다시 고위험 대출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사모대출 중심으로 형성된 그림자 금융의 비중을 줄이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조치는 미국 금융 시스템 내 위험 분포를 비은행권에서 은행권으로 일부 되돌리려는 시도로 주변국 금융당국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다.

 

다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FDIC와 OCC의 발표에 즉각 동참하지 않았다. 연준은 같은 날 별도의 레버리지 대출 규제 완화 조치를 내놓지 않으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그럼에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연준 역시 FDIC와 OCC의 방향에 맞춰 레버리지 대출 감독 기준을 완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연준이 공식 입장을 정리하는 시점에 따라 미국 금융 규제의 전체 기조가 보다 뚜렷하게 드러날 전망이다.

 

연준 내부 인사 변화도 규제 완화 가능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그동안 은행 규제 강화를 강하게 주장해 온 마이클 바 이사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후 금융감독 담당 부의장직에서 물러났다. 뒤를 이어 대표적인 금융 규제 완화론자로 알려진 미셸 보먼 이사가 후임으로 선임되면서, 연준 내 주요 의사결정 라인의 성향이 바뀌었다는 평가가 금융시장 안팎에서 나온다.

 

연준은 인사 교체 이후 대형 은행의 자본비율 부담을 낮추는 방안 등 규제 완화 성격의 조치를 검토·추진해 왔다. 이번 FDIC·OCC의 레버리지 대출 지침 해제는 이러한 흐름에 힘을 실어주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 금융 규제 체계 전반이 위기 이후 강화된 감독에서 성장과 수익성, 시장 경쟁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재조정되는 수순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USA)의 규제 기조 변화는 글로벌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대형 은행의 레버리지 대출 참여가 확대될 경우, 유럽연합(EU)과 영국(UK)을 비롯한 다른 주요국 은행과 사모펀드도 경쟁 압력에 직면할 수 있다. 저신용 기업의 조달 비용이 단기적으로는 다소 낮아질 수 있지만, 경기 둔화 국면에서 부실이 누적될 경우 은행권과 비은행권을 가리지 않는 신용 충격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제 금융감독 기구와 각국 중앙은행은 이미 사모대출과 사모펀드, 사모 신용펀드를 규제 사각지대로 지목하며 통계를 정비하고 리스크 점검을 강화해 왔다. 그동안 미국 은행 규제 강화가 비은행권 급팽창의 배경으로 지목돼 온 만큼, 규제 후퇴가 금융 시스템 전체의 복원력을 높일지, 아니면 새로운 취약성을 키울지에 대한 논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미국(USA) 은행 규제의 방향 전환이 미 연준과 FDIC, OCC의 삼각 공조 속에 얼마나 일관되게 추진될지가 관건이라고 본다. 연준이 어떤 속도와 수위로 레버리지 대출 규제를 손볼지에 따라 글로벌 투자자들의 위험 선호와 각국 금융당국의 정책 선택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는 이번 규제 완화가 실제로 그림자 금융 리스크를 줄이는 결과로 이어질지, 향후 시장 변동성 확대의 불씨가 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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