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중국 비밀경찰 거점 의혹 식당 대표 징역 6개월 집유”…법원, 카드부정사용·관세포탈 유죄

이예림 기자
입력

'중국 비밀경찰서' 국내 거점 의혹이 제기됐던 중식당 동방명주를 둘러싼 형사 재판에서, 대표 왕하이쥔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신용카드 부정사용과 관세포탈 혐의로 유죄 판단을 받았다. 정치·외교적 파장을 낳았던 의혹의 한 축에 대해 사법부 판단이 나오면서 수사와 외교 라인 움직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2단독 구창규 판사는 17일 식품위생법 위반, 옥외광고물법 위반,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동방명주 대표 왕하이쥔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동방명주 법인에는 벌금 500만원, 왕하이쥔의 배우자 임씨에게는 벌금 200만원이 선고됐다.

재판부에 따르면 왕하이쥔과 임씨는 임씨가 운영하는 음식점 관련 대금을 동방명주 명의로 결제한 혐의를 받았다. 재판부는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신용카드 부정사용에 해당한다고 보고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왕씨는 동방명주를 실질적으로 운영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명의대여에도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동방명주와 관련해 왕씨가 맡았던 역할과 수행 업무를 고려하면 실질 운영자로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왕하이쥔에게는 관세법 위반 혐의도 적용됐다. 수입 과정에서 거짓 신고를 통해 관세를 포탈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앞서 약식명령을 확정받은 공범들을 언급하며 "왕씨가 공범들과 메시지를 통해 계약 내용, 수입대금 지급 방법 등을 공유한 사실이 확인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왕하이쥔을 관세포탈 공범으로 인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 일부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왕하이쥔은 동방명주의 영업신고 기한이 2021년 12월 만료됐는데도 관할관청인 서울 송파구에 신고 없이 영업을 계속한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식품위생법상 영업신고는 기속행위로서 기한을 부여할 수 없다"며 해당 공소사실은 범죄 성립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보고 무죄 판단을 내렸다.

 

옥외광고물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면소 결정이 내려졌다. 왕하이쥔은 2022년 12월께 식당 외벽에 대형 전광판을 설치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광판에는 "한국 정치를 조종해 한중 우호를 파괴하고 있다"는 취지의 문구가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동방명주가 중국 비밀경찰서 국내 거점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자, 왕하이쥔이 해명을 명분으로 전광판을 설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이 설치 행위가 옥외광고물법 위반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보면서도, "옥외광고물법에 따른 공소시효가 지난 다음에 공소가 제기됐다"며 면소 판결을 선고했다. 면소는 공소시효 만료 등 사후 사유로 처벌 사유가 소멸한 경우 내려지는 판결이다.

 

이와 별개로 재판부는 임씨가 운영하는 음식점 법인에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또 왕하이쥔의 관세포탈 행위에 관여한 A 법인에 대해서도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법원은 관련 법인들이 범행 구조에 포함돼 있었다고 보고 책임 범위를 나눠 판단했다.

 

동방명주와 왕하이쥔을 둘러싼 사건은 2022년 12월 중국 공안기관의 해외 비밀경찰서 의혹이 국제적으로 확산하면서 정치·외교 쟁점으로 비화했다. 국내에선 동방명주가 중국 비밀경찰서의 한국 내 거점이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외교부와 경찰청, 국가정보원 등이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야권 일각에서는 정부가 중국 정부에 보다 강경하게 항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여권에서는 첩보 수준의 의혹만으로 외교 갈등을 키워선 안 된다는 신중론이 맞섰다.

 

그러나 이날 판결은 신용카드 부정사용과 관세포탈 등 경제·행정법 위반에 대한 형사 책임을 가른 것으로, 이른바 비밀경찰 거점 의혹 자체에 대한 사법적 판단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 해석도 엇갈릴 전망이다. 야권에서는 왕하이쥔이 실질 운영자로 인정된 점을 들어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여지가 있고, 여권에서는 형사 유죄에도 불구하고 비밀경찰 활동 관련 직접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향후 수사기관이 이번 판결 내용을 토대로 비밀경찰 의혹 전반을 다시 들여다볼지, 또는 관세·신용카드 범죄에 국한된 사안으로 정리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다만 외교부와 법무부, 경찰청은 그간 중국 측과의 협의 경과와 국내 수사 결과를 면밀히 검토해, 필요할 경우 추가 조치 여부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한중 관계와 국내 안보 우려를 둘러싼 논쟁을 이어가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와 정보위원회를 중심으로 관련 현안보고와 질의를 계속할 계획이다.

이예림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왕하이쥔#동방명주#중국비밀경찰서의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