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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파이프라인 확장”…파로스아이바이오, 대형 VC 190억 CB 유치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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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반 신약 개발 기술이 국내 바이오 투자 생태계에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 파로스아이바이오가 상장 후 첫 대규모 자금 조달에 성공하면서, AI 플랫폼을 축으로 한 파이프라인 확장 전략에 힘이 실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는 이번 투자를 바이오헬스 전문 대형 벤처캐피털이 AI 신약개발 기업의 임상 추진력을 재평가한 신호로 보며, AI·제약 융합 경쟁의 새로운 분기점으로 해석하고 있다.

 

파로스아이바이오는 4일 19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 발행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상장 이후 처음 진행하는 이번 딜에는 바이오와 헬스케어 분야 비중이 큰 국내 주요 벤처캐피털이 참여했다. 기존 투자자인 DSC인베스트먼트, 컴퍼니케이파트너스, 한국투자파트너스와 상장 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이 후속 투자를 단행했고, 바이오 전문 투자 비중이 높은 아주IB투자가 신규 투자자로 합류했다. 회사는 전환가액 조정 하한선을 8000원으로 설정해, 시가총액 기준으로 최소 1000억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외부에서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파로스아이바이오는 확보한 자금을 핵심 파이프라인과 AI 플랫폼에 집중 투입한다. 먼저 급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후보인 라스모티닙의 병용요법 개발과 기술 이전 전략을 구체화할 방침이다. 회사는 표적 항암제 병용요법이 약효 지속성과 내성 문제를 동시에 겨냥할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는 만큼, 라스모티닙 병용 전략이 글로벌 기술이전 협상의 핵심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난치성 고형암을 타깃으로 한 PHI-501의 임상 1상을 차질 없이 진행해, 고형암 영역에서 AI 설계 후보물질의 안전성과 초기 유효성 데이터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두 파이프라인을 뒷받침하는 기반은 자체 AI 신약 개발 플랫폼 케미버스다. 케미버스는 화합물 구조를 디지털로 표현하고, 기계학습을 통해 표적 단백질 결합력과 약효 가능성을 예측하는 시스템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에서는 후보물질 도출 단계에서 수십만 종 이상의 화합물을 가상 스크리닝하고, 합성 가능성을 고려해 실제 실험으로 가져갈 소수의 유망 후보를 추리는 데 AI가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파로스아이바이오는 이번 투자금을 활용해 케미버스의 예측 정확도를 고도화하고, 암 외 적응증으로 파이프라인을 다각화해 플랫폼 기업으로서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AI 기반 약물 설계는 후보물질 탐색 기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제약 산업 전반에서 채택이 늘어나는 추세다. 기존 방식이 실험실 중심의 반복 합성과 평가에 의존했다면, AI 도입 후에는 디지털 시뮬레이션 단계에서 실패 가능성이 높은 조합을 걸러내 개발 리스크를 사전에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구조 기반 설계와 독성 예측 모델을 결합하면, 동물실험 단계에서 탈락할 후보를 초기 설계 단계에서 배제하는 방식이다. 파로스아이바이오의 케미버스 역시 독성, 약동학, 합성 용이성 등 다양한 인자를 학습 데이터로 활용해 후보군을 압축해 나가는 구조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구글 딥마인드, 인실리코 메디슨, 레커전 등 AI 신약개발 기업이 수십 개의 파이프라인을 외부 제약사와 공동 개발하거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며 상용화를 진행 중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초기 임상 단계에서 AI 기반 설계 데이터와 실제 임상 데이터를 연계 분석해, 다음 단계 용량 설계와 환자 선별 전략에 반영하는 사례도 늘어나는 추세다. 국내에서는 파로스아이바이오를 포함한 일부 기업이 플랫폼 고도화와 파이프라인 집중 전략을 병행하고 있으나, 글로벌 플레이어 대비 임상 후기 단계 파이프라인은 아직 제한적인 편이다.

 

규제 측면에서 AI 자체는 의약품으로 허가받지 않지만, AI가 도출한 후보물질이 실제 신약으로 개발되기 위해서는 기존과 동일하게 비임상, 임상 1·2·3상, 허가 심사 단계를 거쳐야 한다. 다만 각국 규제기관은 AI가 설계 과정에 사용된 경우에도 데이터의 신뢰성과 재현성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AI 활용 비임상 데이터와 실제 실험 데이터의 상관성을 확인하는 가이드라인을 논의 중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AI 플랫폼의 예측 모델과 학습 데이터 구성에 대한 설명 가능성을 높이는 작업도 필수 과제로 꼽힌다.

 

윤정혁 파로스아이바이오 대표는 이번 투자에 대해 회사의 임상 성과와 기술 경쟁력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을 확인한 계기라고 언급했다. 업계에서는 라스모티닙과 PHI-501 등 핵심 프로그램이 계획대로 임상 개발과 기술이전을 진행할 경우, 케미버스를 중심으로 한 파이프라인 확대 속도가 더욱 빨라질 여지도 있다고 본다. 동시에 글로벌 AI 신약개발 경쟁이 이미 치열해진 만큼, 실질적인 임상 성과와 상업적 딜 성사 여부가 국내 AI 신약개발 기업의 평가를 갈라놓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산업계는 이번 투자가 파로스아이바이오의 성장 발판이 될지, 그리고 AI 신약개발 모델이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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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스아이바이오#라스모티닙#케미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