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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기술이 판 바꾼다”…에이비엘바이오, 3.8조 기술수출로 업계 지형 흔든다

임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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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기술이 제약·바이오 산업의 기술수출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최근 에이비엘바이오가 미국 일라이 릴리에 최대 3조8000억원 규모로 플랫폼 기술 수출을 성사시키면서, 단일 후보물질 중심이던 기존 기술이전 패러다임이 대전환을 맞는 모습이다. 기업들은 후보물질에서 플랫폼으로, 한 번의 거래를 넘어 다양한 신약 개발에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게 됐다. 업계는 이번 계약을 글로벌 신약개발 경쟁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일라이 릴리와 ‘그랩바디-B’ 플랫폼의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총액은 최대 25억6200만 달러(약 3조7487억원)에 달하고, 선급금만 585억원에 이른다. 그랩바디-B는 BBB(뇌혈관장벽) 셔틀 플랫폼으로, 뇌와 혈관 사이를 가르는 보호막인 BBB를 통과해 약물이 뇌에 도달하도록 돕는다. 기존에는 BBB가 외부 약물의 전달을 사실상 막아, 알츠하이머 등 퇴행성뇌질환 신약개발에 큰 장벽으로 지적돼 왔다. 그랩바디-B는 이 장벽을 극복할 셔틀 기능을 플랫폼 형태로 구현, 여러 신약 파이프라인에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플랫폼 기술은 후보물질(신약으로 개발될 가능성이 있는 단일 화합물)이 한 질환에 국한된 것과 달리, 하나의 기반 기술을 여러 신약 개발에 연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확립된 플랫폼은 다양한 질환, 표적단백질, 적응증으로 신약 탐색을 확장시켜 기술수출 기회를 대폭 늘린다. 뿐만 아니라, 여러 기업이 독자적 신약 후보 발굴과 파이프라인 강화에 플랫폼을 도입하는 추세도 가속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에이비엘바이오 외에도 유망 플랫폼 기술기업들이 잇따라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알테오젠은 인간 히알루로니다제 기반 ‘ALT-B4’로 정맥투여 바이오의약품을 피하주사로 변환하는 플랫폼을 확보, MSD·산도즈·아스트라제네카 등과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리가켐바이오는 항체약물접합체(ADC) 개발 플랫폼 ‘콘쥬올’로 암젠, 다케다 등과 기술이전을 잇따라 성사시켰다. 맞춤형 링커 및 약물 제공 시스템을 결합한 피노바이오의 ‘PINOT-ADC’, 주사제를 경구 약제로 바꾸는 한미약품의 ‘오라스커버리’ 역시 글로벌 제약사에 이어진 라이선스아웃 실적으로 두각을 보인다.

 

특히 이번 플랫폼 기술 수출은 글로벌 신약개발 시장에서의 ‘기술 거래 구조’ 재편까지 이끌고 있다. 미국, 유럽 등 빅파마는 기존 단일 화합물 대신, 플랫폼 자체에 대한 투자와 확보 싸움을 본격화하는 추세다. 업계 분석에 따르면 플랫폼 라이선스 아웃은 후보물질 이전 대비 기대 수익이 크고, 임상 성공 가능성도 분산 투자 효과로 높여준다.

 

전문가들은 기술이전 계약 규모가 커지면서 신약개발 패러다임 변화에 주목한다. “더 이상 특정 후보물질만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담보하기 어렵다. 실제로 에이비엘바이오는 사노피, GSK, 릴리 등과 누적 9조2000억원 규모 대형 계약을 체결하며 플랫폼 강국 위상을 굳혔다”고 신한투자증권 신약 담당 연구원은 평가했다.

 

한편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IND(임상시험계획신고) 등 절차에서 플랫폼 기술 활용에 대한 규제 명확화, 글로벌 표준화, 기술 보호 전략이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과 국내 기업 간 기술수출 경쟁이 본격화하며, 정책 및 제도 환경 변화도 예의주시된다.

 

산업계는 혁신적 플랫폼 기술이 실제 신약 개발로 이어지고, 대규모 기술수출 흐름이 장기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기술과 규제, 글로벌 협력구조의 정교한 균형이 한국 바이오 산업의 다음 성공 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임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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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비엘바이오#플랫폼기술#기술수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