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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체면 말이 아니다"…정동영, 유엔사 DMZ 출입통제 정면 비판

한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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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출입 통제를 둘러싸고 통일부와 유엔군사령부가 충돌했다. 통일부 장관과 대통령실 핵심 참모의 비무장지대 방문이 잇따라 좌절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DMZ 관할권을 둘러싼 주권 논쟁이 다시 부상하는 모양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3일 국회에서 열린 DMZ의 평화적 이용 및 지원 법률안 관련 입법공청회 축사에서 유엔군사령부의 DMZ 출입 불허 사례를 거론하며 강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정 장관은 최근 김현종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의 DMZ 출입이 좌절된 사실을 언급하면서 유엔군사령부의 출입 허가 관행을 비판했다.

정 장관은 축사에서 "얼마 전에도 국가안보실 1차장이 백마고지 유해 발굴 현장에 가는 걸 불허당했다"고 말했다. 김현종 1차장은 중부전선 DMZ 내 백마고지에서 진행된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현장을 방문하려 했으나 유엔군사령부 승인 문제로 발길을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는 지난해 10월 15일부터 11월 28일까지 약 40일간 백마고지 일대에서 유해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김현종 1차장의 출입 불허 경위나 구체적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 고위 인사, 특히 군 안보정책을 담당하는 국가안보실 핵심 인사의 DMZ 출입을 유엔군사령부가 막은 것은 매우 이례적 상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 장관은 과거 사례도 함께 거론했다. 그는 "몇 년 전에는 현직 통일부 장관이 대성동 마을에 가는 걸 불허당했다"며 "이런 것을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문제의식"이라고 했다. 2019년 김연철 당시 통일부 장관은 DMZ 내 대성동 마을을 기자단과 함께 방문하려 했지만, 유엔군사령부가 기자단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김 장관의 방문도 무산된 바 있다.

 

정 장관은 DMZ 내 출입 통제 현실을 두고 주권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그는 "우리의 영토 주권을 마땅히 행사해야 할 그 지역의 출입조차 통제당하는 이 현실을 보면 주권 국가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생태, 환경, 문화, 역사 등 비군사적인,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사업들이 너무 많이 있다"며 DMZ 평화적 이용을 위한 제도 정비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 장관은 특히 국회에서 논의 중인 DMZ의 평화적 이용 및 지원 법률안 처리에 기대를 나타냈다. 그는 "반드시 올해 안에 법이 상정되고 처리되기를 간절히 희망해 마지않는다"고 말하며 입법 논의에 정치권이 속도를 내줄 것을 촉구했다.

 

현재 유엔군사령부는 정전협정의 관할권을 근거로 DMZ 출입 시 목적과 관계없이 사전 허가를 요구하고 있다. 군 작전뿐 아니라 각종 기념행사, 유해 발굴, 취재, 평화관광 등 민간·비군사 활동 전반에 유엔군사령부 승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통일부와 학계, 시민사회 일부에서는 유엔군사령부가 비군사적 DMZ 출입에까지 포괄적인 허가권을 행사하는 데 법적 근거가 취약하다고 지적해 왔다. 정전협정 서문에 이 협정이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한다고 명시돼 있는 만큼, 민간 차원의 평화·문화 사업까지 직접 규율 대상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반론이다.

 

정치권에서도 비군사적 목적의 DMZ 접근 절차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 등은 DMZ를 평화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출입의 경우 통일부 장관 허가만으로 가능하도록 하는 특례를 담은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사실상 비군사 분야 DMZ 출입의 1차 관문을 한국 정부로 옮기려는 시도다.

 

대통령실은 김현종 1차장의 출입 불허 배경과 관련해 말을 아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사유를 묻는 질문에 "내용 확인이 제한된다"고만 전하며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유엔군사령부와의 조율 과정이나 이견 여부에 대해서도 별도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유엔군사령부는 출입 불허 사유에 대한 질문에 구체적인 답변을 피하면서도 절차와 원칙을 강조했다. 유엔군사령부는 입장문을 통해 "유엔사는 정전협정의 집행 권한을 가진 기관으로, 안전과 준수, 지역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확립된 절차에 따라 모든 출입 요청을 검토한다"고 설명했다. 출입 허용 여부는 정전협정 이행과 안전상 필요에 따라 판단해 왔다는 뜻으로 읽힌다.

 

유엔군사령부는 이어 "정전협정은 DMZ를 포함해 정전협정 관리 지역에 대한 민간·군사적 접근을 규율하는 구속력 있는 기본 틀"이라고 밝혀, 민간·비군사 목적 접근도 자신들의 관할에 속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DMZ 평화 탐방이나 취재, 환경 조사 등도 정전협정 틀 안에서 승인 대상이라는 해석이다.

 

유엔군사령부는 또 "이러한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조치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와 긴밀한 협의를 권장하고, 공동의 안보 목표를 지원하기 위한 평화 구축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와의 협의를 전제로 공동 안전과 평화 구축을 강조하면서도, DMZ 관할권에 대한 기존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정통한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DMZ 출입 권한을 둘러싼 논쟁이 한미동맹 구조, 정전협정 체제, 평화체제 전환 논의와 맞물려 장기 과제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주권과 국제협정 간 경계, 유엔군사령부의 법적 지위 등을 둘러싼 복합 쟁점이기 때문이다.

 

한편 국회는 DMZ의 평화적 이용 법안 심사를 통해 비군사 목적 DMZ 출입 제도를 재정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통일부의 역할 강화와 함께 유엔군사령부와의 조율 구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치권은 법률안 심사 과정에서 주권과 동맹, 평화경제 구상 등 복합 쟁점에 대해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한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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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유엔군사령부#dm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