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피부암도 조기 포착"…AI진단, 피부과 진료 판도 바꾼다
피부 사진 한 장으로 피부암 여부를 가려내는 인공지능 기술이 실제 진료 현장에서 조기 진단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병변 이미지를 앱에 올리면 몇 초 만에 악성 가능성을 제시해, 장기간 연고 처방만 반복되던 사례를 수술이 가능한 초기 단계에서 암으로 확인하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실사용 데이터 기반 검증이 이뤄지면서, AI 피부진단 기술이 1차 의료와 개인 건강관리 시장을 동시에 흔드는 분기점에 들어섰다고 평가한다.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 성형외과 김성환 교수 연구팀은 국내 9개 병원이 보유한 70개 피부질환 15만 2443건의 임상 데이터와 전 세계 228개국에서 수집된 169만 건의 실사용 데이터를 결합해 AI 피부진단 모델 ModelDerm의 성능을 평가했다. 분석 결과 ModelDerm은 피부암을 찾아내는 민감도 78.2, 암이 아닌 경우를 정확히 골라내는 특이도 88을 기록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npj 디지털 메디슨에 실렸고, 생물학연구정보센터의 한빛사에도 선정됐다.

ModelDerm은 김성환 교수와 한승석 아이피부과 원장이 공동 개발한 딥러닝 기반 피부질환 판독 모델이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병변을 촬영하면 AI가 수백만 장의 피부 이미지에서 학습한 패턴을 토대로 피부암, 양성종양, 감염성 질환 등 180여개 질환 범주 중 어느 쪽에 가까운지 확률 형태로 제시한다. 기존에는 전문의가 육안으로 병변의 경계, 색조 변화, 궤양 유무를 보고 진단했다면, AI는 이 미세한 시각적 특징을 픽셀 단위에서 추출해 분류 정확도를 끌어올린 구조다.
특히 이번 기술은 초기 기저세포암처럼 겉보기에 종기나 만성 염증으로 보이는 병변을 조기에 걸러내는 데 강점을 보였다. 실제로 60대 여성 환자 한 명은 6개월 넘게 만성 염증으로 진단받고 연고 치료만 받다가, 딸의 권유로 ModelDerm 분석을 진행한 뒤 즉시 피부암 고위험 판정을 받았다. 이후 병원 조직검사에서 초기 기저세포암이 확인됐고, 광범위 절제술과 국소피판 재건 수술을 거쳐 안정적으로 회복 중이다.
기술 구현 면에서 ModelDerm의 특징은 단순 이미지 분류를 넘어 인종, 피부색, 생활환경 차이를 반영하도록 설계됐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북미, 아시아, 아프리카 등 각 지역에서 수집된 실사용 이미지를 함께 학습시켜, 지역별 유병 패턴을 장기적으로 반영할 수 있게 했다. 실제 분석에서는 북미에서 피부암 진단 비율이 2.6로 상대적으로 높았고, 아시아에서는 55.5에서 양성종양이, 아프리카에서는 17.1에서 감염성 피부질환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등 지역 특성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연구진은 이 결과를 맞춤형 예측 AI로의 진화 신호로 해석했다.
시장성과 측면에서 이 같은 AI 피부진단 기술은 병원 대기시간과 불필요한 방문을 줄이고, 진료가 필요한 고위험군 환자를 선별해 보내는 전(前) triage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스마트폰 앱 형태로 무료 제공돼 일반인 접근성이 높고, 고령층이나 만성 피부질환 환자가 집에서 반복적으로 병변 변화를 모니터링하는 데도 활용될 여지가 크다. 자외선 노출이 많은 얼굴, 코, 뺨, 귀 주변은 고령층에서 피부암 발생이 잦은 부위로, 3개월 이상 상처가 낫지 않거나 딱지가 반복되고 피가 나는 경우 빠른 AI 보조 진단과 전문의 내원이 조합되면 조기 수술 가능성이 높아진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이미지 기반 AI 진단 기술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흑색종 검출을 목표로 한 피부 병변 분류 AI가 학술대회와 벤처 투자 시장에서 활발히 논의돼 왔으며, 일부 국가는 규제 당국 허가를 받아 전문의 보조 진단도구로 제한적 상용화에 들어갔다. 다만 대부분이 소규모 연구 데이터나 임상시험 환경에서 성능을 검증한 수준이었다. 이번 ModelDerm 연구는 228개국 실사용 데이터를 포함해 실제 사용 환경의 변수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국내 경쟁력뿐 아니라 국제 비교에서도 의미 있는 사례로 평가된다.
규제와 제도 측면에서는 AI를 통해 제시된 피부암 의심 결과를 어떻게 의료 행위와 연계할지에 대한 논의가 향후 관건이 될 전망이다. ModelDerm과 같은 앱은 현재 의료진의 최종 진단을 대체하지 않고, 환자가 전문의 방문 필요성을 판단하는 보조도구 성격에 머무르고 있다. 다만 향후 의료기기 소프트웨어로 정식 허가를 받을 경우, 원격 상담과 연계된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로 확장될 여지도 있다.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 민감한 건강정보 저장과 전송, 알고리즘 편향성에 대한 검증 기준 설정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AI 피부진단이 조기 암 발견을 돕는 동시에, 의료 체계 전반의 효율을 바꾸는 촉매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김성환 교수는 초기 피부암이 종기나 상처, 단순 염증과 혼동돼 진단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며, AI가 이런 병변을 조기에 잡아내 임상 진단과 치료 시기를 앞당기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임상 현실에서 AI가 얼마나 정확히 작동하는지를 입증한 연구라며, 앞으로 조기 진단과 예측 기반 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구팀은 향후 피부암을 넘어 아토피, 건선, 대상포진 등 만성 및 감염성 피부질환으로 AI 적용 범위를 넓히고, 환자별 생활습관과 유전 요인을 결합한 정밀의료 모델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가정용 AI 보조 진단이 실제 진료 패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그리고 제도와 윤리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술과 임상, 규제와 산업 간 균형이 차세대 피부 헬스케어 시장의 성패를 좌우하는 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