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개인정보 유출됐지만 떠나지 않는다”…쿠팡 사태로 본 한국 소비자 신뢰의 민낯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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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고객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가운데,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이 “잠재적 고객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한국 온라인 소비 환경의 구조적 취약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개인정보 보호 우려가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주요 플랫폼에 대한 의존과 낮은 이탈 가능성이 공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건은 최근 쿠팡에서 발생한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로, 이름과 이메일 주소, 배송지 주소록에 입력된 이름·전화번호·주소, 일부 주문정보가 외부에 노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쿠팡은 별도로 관리되는 결제정보, 신용카드 번호, 로그인 정보는 유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계정과 관련해 고객이 따로 취할 조치는 없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쿠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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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JP모건은 전날 발간한 보고서에서 “쿠팡이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대해 덜 민감해 보인다”며 “이번 사태로 인한 쿠팡 소비자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온라인 쇼핑 시장에서 쿠팡이 제공하는 로켓배송, 구독 서비스 등 편의성이 커 대체가 쉽지 않다는 점이 전제된 분석으로 해석된다.

 

다만 JP모건은 재무적 충격 가능성은 적지 않다고 봤다. 보고서는 쿠팡이 자발적으로 보상 패키지를 내놓을 수 있고, 한국 정부가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벌금을 부과할 가능성이 높다며 “상당한 규모의 일회성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출 규모와 경위를 토대로 행정 조사와 제재 수위가 결정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증시 상장사로서의 공시 의무 이행 여부도 쟁점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규정에 따르면 나스닥 등 미국 시장에 상장된 기업은 ‘중대한 사이버 보안 사고’가 발생할 경우 4영업일 이내에 이를 공시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공시 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 SEC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쿠팡은 아직 별도의 공지를 내지 않은 상태다.

 

투자자 반응은 주가에 먼저 반영됐다. 1일(현지시간) 나스닥에서 쿠팡(CPNG)은 전 거래일보다 5.36% 하락한 26.6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실이 알려지면서 단기 매도세가 강해진 것으로 분석된다. 향후 한국 정부 조사 결과와 미국 당국의 대응 여부에 따라 추가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한국 사회의 개인정보 보호 인식과 소비 행태를 동시에 드러낸 사건이라고 지적한다. 일부 학계와 시민단체는 “플랫폼 독점 구조 속에서 ‘어디 갈 데 없다’는 심리가 개인정보 유출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이용을 지속하게 만든다”고 분석하고 있다. 개인정보가 반복적으로 유출되는 환경에서도 실질적인 제재와 소비자 선택권 확대가 미흡하다는 비판이다.

 

한편 개인정보보호 당국과 관련 부처가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경우, 유출 경위와 사고 인지 시점, 신고 및 통지 절차 준수 여부 등이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과징금, 시정명령 등 행정 제재와 함께 재발 방지 대책 요구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개인정보 보호와 기업 책임을 둘러싼 논의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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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jp모건#개인정보유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