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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K팝 차트 띄우는 멜론…외산 공세 속 기준 선점 노린다

전서연 기자
입력

동북아 K팝 소비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통합 차트가 나온다. 멜론이 중국과 일본 주요 음원 플랫폼과 손잡고 K팝 아티스트 차트를 추진하면서다. 유튜브뮤직에 이어 스포티파이까지 국내 시장 공세를 강화하는 가운데, 멜론이 차트 자체를 ‘K팝 기준 인프라’로 고도화해 충성 이용자를 묶어 두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플랫폼과의 가격·UX 경쟁을 넘어 데이터와 지표 주도권 싸움이 본격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중국 텐센트뮤직엔터테인먼트, 일본 라인뮤직과 K팝 아티스트 차트 출시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가칭 K팝 아티스트 차트는 멜론 국내 이용량에 텐센트뮤직과 라인뮤직의 소비 데이터를 결합해 산출하는 지표다. 각국 플랫폼의 스트리밍·다운로드 등 이용량 데이터를 연동해 사실상 동북아 전역의 K팝 팬덤 반응을 하나의 차트로 시각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멜론은 내년 상반기 차트 공개를 목표로 세부 산식과 반영 비율을 조율 중이다.

멜론 차트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K팝 성공을 가늠하는 핵심 데이터로 활용돼 왔다. 음악 방송, 연말 시상식의 음원 점수 산정 기준은 물론 빌보드 차트에도 참고 지표로 반영된다. 팬들은 특정 시간대에 멜론 재생을 집중하는 이른바 스밍총공을 통해 차트 순위를 끌어올리며 성적 경쟁을 벌여왔다. 지금까지 팬들은 멜론 등 국내 차트와 빌보드, 오리콘, 애플뮤직·스포티파이 글로벌 차트 등 해외 지표를 따로 확인해야 했다.

 

새로 추진되는 K팝 아티스트 차트가 구축되면 멜론 안에서 중국·일본에서의 반응까지 묶어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업계는 이를 두고 멜론이 단순 음원 서비스에서 나아가 K팝 팬덤에게 ‘글로벌 체급’을 보여주는 데이터 허브로 자리 잡으려는 시도로 본다. 특정 아티스트의 국내 성과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 파급력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어, 국내 팬들의 스트리밍 참여를 더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배경에는 외산 스트리밍 플랫폼의 빠른 확장이 자리한다. 국내 시장에서 유튜브뮤직이 이미 1위 사업자로 자리 잡은 데 이어, 스포티파이가 가격 경쟁력과 번들 전략을 앞세워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특히 스포티파이는 네이버플러스 멤버십과 손잡고 이용자 락인 전략을 강화했다. 월 4900원인 네이버 멤버십 가입자는 스포티파이 프리미엄 베이식을 추가 비용 없이 쓸 수 있어, 체감상 3000원대 가성비 요금제로 인식되는 구조다.

 

제휴 발표 이후 스포티파이의 국내 이용 지표는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냈다. 모바일인덱스 자료를 보면 지난달 28일 네이버 멤버십 제휴 소식이 나온 뒤 1일부터 7일까지 스포티파이 모바일 앱 주간 이용자 수는 122만7528명으로 전주보다 6.5퍼센트 늘었다. 같은 기간 주간 신규 설치 건수도 평균 4만건 수준에서 6만건을 넘기며 증가세를 보였다. 광고 기반 무료 요금제 도입에 이어 멤버십 번들까지 더해지며 외연 확대 속도를 키운 모양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5 음악산업백서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주로 사용하는 음원 플랫폼’으로 멜론을 꼽은 비율은 31.7퍼센트로, 유튜브뮤직에 이어 2위다. 스포티파이는 5.2퍼센트로 5위지만 전년 1.7퍼센트에서 세 배 수준으로 성장했다. 단가와 번들 혜택을 앞세운 글로벌 플랫폼의 공세가 지속될 경우 멜론의 점유율이 서서히 잠식당할 수 있다는 긴장감이 커지는 이유다.

 

이런 환경에서 멜론의 새 차트 전략은 가격·프로모션 경쟁이 아닌 ‘K팝 표준 지표’ 선점을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K팝에 특화된 데이터 수집과 해석 역량을 강화해, 플랫폼을 옮기기 어렵게 만드는 비가격 경쟁 자산을 쌓겠다는 의미다. 글로벌 팬덤과 기획사, 아티스트 모두에게 참고 기준이 되는 차트를 먼저 구축하면, 멜론의 산업 내 영향력은 가입자 수 이상의 가치로 평가될 수 있다.

 

차트의 실효성을 가르는 핵심 변수는 편입되는 해외 데이터의 대표성과 설계 방식이다. 텐센트뮤직은 QQ뮤직, 쿠고우 등 여러 서비스를 거느린 중국 최대 음원 사업자로, 산하 플랫폼 합산 점유율이 70퍼센트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텐센트뮤직 내 K팝 이용량은 중국에서의 실제 소비 흐름을 상대적으로 잘 반영할 수 있는 데이터로 평가된다. 다만 중국 내 각 플랫폼의 사용자 특성이 달라 연령대·지역 편중 등이 어떻게 보정되는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일본에서는 아마존뮤직,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등 글로벌 사업자가 상위권을 형성하고 있어 라인뮤직의 점유율은 약 10퍼센트 수준으로 추정된다. 절대 점유율만 보면 대표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라인뮤직은 약 9900만명이 쓰는 메신저 라인과 긴밀히 연동돼, 메시지 공유나 스토리 등 소셜 기능을 통해 팬덤 중심 이용 패턴을 정교하게 포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멜론이 차트 산식에 이런 팬덤 행동 데이터의 가중치를 어떻게 반영하는지가 차별점이 될 수 있다.

 

K팝 아티스트 차트가 별도 글로벌 지표로 운영될지, 기존 멜론 국내 차트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도 사용자 체감도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국내 순위와 동북아 통합 순위가 병렬로 제공될 경우 팬덤은 두 개의 목표를 관리해야 해 스트리밍 전략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하나의 통합 순위로 단순화될 경우, 국내 이용자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멜론으로서는 데이터 통합 과정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어떻게 담보할지도 과제다. 국가별 시장 규모, 플랫폼 점유율, 사용자 수 등을 어떤 기준으로 보정해 반영할지에 따라 아티스트 간 순위 변동 폭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K팝 팬덤 사이에서 차트 신뢰도 논쟁이 빈번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산식 공개 수준과 검증 절차가 장기적인 신뢰 형성의 열쇠로 지목된다. 글로벌 플랫폼 연동에 따른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국외 이전 이슈도 규제 당국과의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멜론이 확보한 동북아 K팝 데이터가 향후 투어 일정·마케팅 전략·굿즈 기획 등 사업 전반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정 지역에서의 스트리밍 급증이나 이용 패턴 변화는 수요 예측의 기초 지표로 쓰일 수 있고, 레이블 입장에서는 홍보 예산 배분과 현지 프로모션 의사결정에 직접적인 참고자료가 된다.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레이블·투자사와의 협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자산으로 축적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장윤중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는 K팝 아티스트 차트 추진 배경에 대해 K팝 시장에 신뢰도 높은 기준을 제시해 산업·아티스트·팬 모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멜론이 축적한 국내 이용 데이터와 텐센트뮤직·라인뮤직의 해외 소비 데이터를 결합해 K팝 생태계 성장과 글로벌 위상 제고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이다. 산업계는 멜론의 동북아 차트 전략이 외산 플랫폼 공세 속에서 실제 시장 지배력 유지로 이어질지 지켜보고 있다.

전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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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카카오엔터테인먼트#스포티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