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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핵잠 건조 지지"…미국, 중국 견제 속 한미 해양안보 연대 부각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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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안보 구도를 둘러싼 미중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미국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 계획을 역내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 연대의 상징으로 부각했다.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특정 지점으로 거론하며 해양 안보 공조를 전면에 내세운 만큼, 향후 한미동맹의 전략적 무게 중심도 해군력과 조선 산업 협력으로 이동할지 주목된다.

 

조나단 프리츠 미국 국무부 선임 부차관보는 3일 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전략국제문제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포럼 기조연설에서 지난 10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한국의 재래식 무장을 갖춘 핵추진 잠수함 건조 방침을 거론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며 양국이 관련 요구 사항과 도전 요소를 규명해 다루기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리츠 부차관보는 특히 한국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두고 "역내 위협들에 대항할 우리의 집단적 역량을 진전시키는 양자 협력의 명백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여기서 말한 역내 위협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함께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함께 지칭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가 언급한 방향성은 앞서 한미 정상회담 합의 이행을 위해 지난달 발표된 공동 설명자료와도 맞닿아 있다. 당시 자료에는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과 더불어 양국이 북한을 포함해 동맹에 대한 모든 역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재래식 억제 태세를 강화한다는 표현이 포함됐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이 표현이 중국 견제 메시지로 읽힌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프리츠 부차관보는 한미동맹의 구조적 성격을 설명하면서 "한미 동맹의 핵심 토대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며, 3개의 핵심 분야에서 가시적인 연속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철통같은 확장억제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추구, 대만해협 및 남중국해의 평화·안전 보장을 세 축으로 제시했다.

 

그는 "우리는 한국을 비롯한 지역 전반에 걸친 파트너들과 협력해 국제 해양법을 지키고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 그리고 그 너머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이 참여하는 인도·태평양 해양 협력 구도가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문제와 직접 연결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대목이다.

 

또한 프리츠 부차관보는 "우리는 한반도와 더 넓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이슈들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서울과 더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구체적인 협력 사례로 조선 산업을 꼽았다. 그는 한국이 주목할 만한 숙련도를 확립해 온 분야라며, 조선 분야를 비롯한 한미 산업 협력이 안보 협력의 토대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핵우산 공약과 관련해서도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프리츠 부차관보는 "우리의 확장억제 약속은 철통같이 유지되고 있다"고 못 박으며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 공약이 흔들리지 않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북한에 대해 완전히 조율된 상태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계속 촉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제·산업 협력에서도 한국의 역할을 비중 있게 평가했다. 프리츠 부차관보는 한미 정상회담 합의 이행을 위한 공동 설명자료를 거론하며 "한국은 미국을 재산업화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에 절대적인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미국 내 선도적 투자국 중 하나라며 이 투자가 미국 일자리 창출을 뒷받침하고 미국 에너지 산업에 연료를 공급하며, 신뢰받는 기술 리더십을 촉진하고, 해양 파트너십도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우리는 핵심 분야, 즉 조선, 에너지, 반도체, 제약, 핵심 광물, 인공지능과 양자 기술 등에서 한국의 지속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런 투자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한국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임시 비자를 통해 한국 전문가들이 미국에 와서 미국 노동자들에게 정밀 제조 작업 운영법을 교육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미 간 인력 교류 확대를 경제안보 협력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 셈이다.

 

최근 양국 간 현안이었던 이른바 조지아 사건에 대해 그는 "조지아 사건 이후 크리스토퍼 랜도 국무부 부장관은 9월 초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 정부의 유감을 표명했고, 이후 공개적으로 이같은 유감을 강조해왔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도 분명히 밝혔듯 우리는 한국 국민들이 임시로 미국에 와 미국 노동자들을 고정밀 일자리에서 훈련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조지아 사건 이후 불거진 한국 기술인력 처우 논란을 진화하면서도, 고급 기술인력의 미국 내 활동 필요성을 재차 상기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날 포럼에서는 전직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도 한반도 정세와 대북 정책에 대한 견해를 내놨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지낸 스티브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은 "북한의 비핵화는 아직 죽은 게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관여할 상승요인이 없다"고 말하며 단기간 내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에는 선을 그었다.

 

조 바이든 전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커트 캠벨 아시아그룹 이사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향후 대북 발언 수위를 전망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런 발언이 예측하기 어려운 일련의 연쇄 반응을 촉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핵보유국 지위 인정은 동북아 안보 구조 전반에 중대한 파장을 낳을 수 있는 만큼, 정치적 선택지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다.

 

캠벨 이사장은 또 한국의 미국 조선업 지원 구상인 마스가 프로젝트도 언급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긍정 평가하며 "조선 문제에 대한 이 대통령의 접근 방식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통령과 매우 분명한 게임 플랜을 갖고 있었다"고 전해 한미 정상 간 조선·해양 협력 구상이 상당한 수준으로 논의됐음을 시사했다.

 

한미 양국이 핵추진 잠수함과 조선 산업, 첨단 제조 협력을 안보 의제와 연결하는 구도를 강화하면서, 향후 한국의 전략 자산 운용과 대중·대북 정책 선택지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워싱턴발 메시지가 누적되면서 한국 정부와 국회는 인도·태평양 전략, 확장억제 운용, 첨단 산업 투자와 인력 교류 체계 등을 둘러싼 후속 논의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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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프리츠#핵추진잠수함#한미동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