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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체 동물실험 축소 가속…FDA, 대체시험 가이드로 R&D 재편

오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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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클론 항체를 중심으로 한 바이오의약품 개발 전략이 비인간 영장류 동물실험 축소 기조와 맞물리며 재편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 FDA가 단일 특이성 단클론 항체를 대상으로 비임상 독성시험을 간소화할 수 있는 가이던스 초안을 내놓으면서, 동물 기반 독성평가 대신 오가노이드와 인공지능 등 대체시험으로 옮겨가는 흐름이 제도권에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항체 의약품 개발 비용을 낮추는 동시에, 글로벌 수준에서 동물실험 의존도를 줄이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해석한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FDA는 최근 단클론 항체의 비인간 영장류 독성시험을 폐지하거나 축소할 수 있는 제품 유형과 비임상 설계 방향을 담은 가이던스 초안을 공개했다. 전형적인 항체 비임상 프로그램은 6개월간의 비인간 영장류 독성시험을 포함하며, 이 과정에만 100마리가 넘는 원숭이가 사용되고 개체당 약 5만 달러의 비용이 소요된다. FDA는 이런 구조가 항체 의약품 특성에 비해 과도하다고 보고, 불필요한 영장류 사용을 줄이면서도 안전성 평가의 핵심은 유지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가이던스 초안의 대상은 하나의 분자 표적만을 인식하는 단일 특이성 단클론 항체다. 대부분의 치료용 항체는 특정 표적에만 결합하는 큰 단백질 구조를 가지고 있어, 전신 독성이 발생할 여지가 소분자 화합물보다 상대적으로 낮다. 항체의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독성은 대개 목표로 하는 약리학적 효과가 과도하게 발현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이 때문에, 목표 표적과 작용기전이 명확히 규명된 항체에 대해서는 다수의 동물을 이용한 장기 반복독성시험 대신, 단기 시험과 체외 기반 평가를 조합하는 식의 간소화가 가능하다는 논리다.

 

항체의 대사 경로도 비임상 축소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단일 특이성 항체는 대부분 간 효소에 의존하는 소분자 약물과 달리, 체내에서 단백질 이화와 분해 과정을 통해 제거된다. 그 결과 대사산물로 인한 종 특이적 독성이나 예기치 못한 대사체 안전성 문제가 나타날 위험이 훨씬 작다. FDA는 이런 특성을 고려하면 항체 개발에서 종간 대사 차이를 확인하기 위한 광범위한 동물실험이 필수적이지 않을 수 있으며, 약리학적 활성 평가에 필요한 최소한의 동물연구만 수행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단일 특이성 항체의 경우 대부분의 약리학적 활성이 비인간 영장류에서만 확인되기 때문에, 그동안 해당 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FDA는 이번 가이던스를 통해 이런 구조를 단계적으로 줄이겠다는 정책 신호를 제시했다. 가이던스 초안은 비필수적인 장기 독성시험을 재검토하고, 표적 발현 패턴과 기전 기반 위험평가를 바탕으로 시험 기간과 동물 수를 줄이는 접근법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FDA는 지난 4월에도 단클론 항체와 기타 바이오의약품 전반에서 동물실험 요건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당시 발표에서 FDA는 독성·약효 평가 체계를 개편해 R&D 비용 부담을 완화하고, 궁극적으로 의약품 가격 안정화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번 단일 특이성 항체 가이던스 초안은 해당 로드맵을 구체화하는 후속 조치로 해석된다.

 

대체시험 기술 측면에서는 AI 기반 계산 독성모델과 오가노이드 등 인체 유사 모델의 활용이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FDA는 동물실험을 축소하는 대신, 인공지능을 활용한 약물 반응 예측 모델과 체외에서 인간 장기 기능을 모사한 오가노이드 독성시험을 조합하는 다중 접근 방식을 독려하고 있다. AI 독성예측 모델은 대규모 화합물·단백질 데이터베이스를 학습해 독성 발생 가능성을 통계적으로 산출하는 기술로, 후보물질 스크리닝 단계에서 동물 투입 전 사전 위험 평가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해 간, 심장, 뇌 등 특정 장기의 구조와 기능을 부분적으로 재현한 조직 모델이다. 항체 의약품의 경우 면역세포 오가노이드나 암 오가노이드와 결합해 약효와 독성을 동시에 관찰하는 연구가 늘고 있다. FDA는 이런 플랫폼을 비임상 패키지의 일부로 수용하는 방향을 검토하며, 장기적으로는 동물실험의 법적 요구 수준을 낮추는 근거자료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미국 보건당국 전반도 동물실험 축소에 보조를 맞추는 분위기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CDC는 올해 연말까지 원숭이를 이용한 실험을 중단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국립보건원 NIH는 별도의 동물실험 대체 추진 조직을 신설하고, 오가노이드 모델링 센터 구축을 위해 약 87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연구비 배분 구조를 대체시험 쪽으로 이동시키며, 장기적으로는 동물 기반 연구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낮추는 전략이 병행되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제약사와 바이오기업 입장에서는 이번 변화가 R&D 설계와 비용 구조, 개발 일정 전반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비인간 영장류 독성시험이 줄어들면 단기적으로는 개발 비용과 기간을 단축할 수 있지만, 대신 AI 모델과 오가노이드 인프라, 고도화된 분석 역량에 대한 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국내 기업의 경우 FDA 가이던스에 맞는 비임상 데이터 패키지를 마련하기 위해, 동물실험기관뿐 아니라 디지털 독성평가와 체외시험 플랫폼과의 협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과 영국에서도 유사한 방향성이 포착된다. 유럽연합은 화학물질과 화장품 규제에서 비동물시험 수용 범위를 넓혀 왔고, 영국과 독일은 오가노이드와 인체 미세환경을 모사한 칩온어칩 기술을 이용한 독성평가 가이던스를 정비하는 중이다. 다만 항체 치료제와 같이 복잡한 면역 반응을 수반하는 경우, 동물 데이터를 완전히 배제하기보다는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정책 타협이 이뤄지는 분위기다.

 

규제 측면에서는 안전성 저하 우려를 어떻게 관리할지가 관건으로 지목된다. 동물실험 축소가 곧바로 임상 실패나 예기치 못한 부작용 증가로 이어지지 않도록, 데이터 품질 기준과 검증 절차를 강화하는 보완책이 병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FDA는 가이던스 초안에서 표적 기전, 약동학 PK, 면역반응 등 핵심 정보에 대한 정량적 근거를 요구하면서, 동물시험이 줄어드는 대신 체외와 인실리코 in silico 데이터의 신뢰성을 높이는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항체 의약품 분야에서 시작된 동물실험 축소 흐름이, 향후 유전자치료제와 세포치료제 등 다른 첨단 바이오의약품 영역으로 확산될 여지도 있다고 본다. 다만 기술적 난이도와 안전성 리스크가 높은 분야일수록 전면적인 동물실험 대체보다는 점진적 축소 전략이 우세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산업계는 이번 FDA 가이던스가 실제 의약품 개발 현장에서 어느 수준까지 수용될지, 그리고 비동물시험 생태계가 얼마나 빠르게 성장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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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a#단클론항체#오가노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