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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이 골목 놀이터로”…당근, MZ 연말 소셜웰니스 자극

윤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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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가 스마트폰 속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다시 골목길 술래잡기 문화를 꺼내 들고 있다. 중고거래 서비스로 알려진 당근의 지역 기반 모임 기능을 매개로, 연말을 앞두고 추억의 놀이인 경찰과 도둑 모임이 전국 곳곳에서 열리며 새로운 형태의 소셜 웰니스 실험장이 되고 있다. 단순 거래 앱에 머물던 위치 기반 서비스가 오프라인 커뮤니티 허브로 전환되는 흐름 속에서, 플랫폼이 개인의 외로움과 관계 맺기 방식을 어떻게 재설계할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이런 활동이 향후 데이터 기반 액티비티 추천, 멘탈 헬스케어 서비스와 결합될 여지도 있다고 본다.

 

경찰과 도둑, 일명 경도 모임은 온라인 상에서 참가자를 모집해 정해진 공원이나 광장에서 술래잡기를 즐기는 방식이다. 당근 앱과 각종 SNS에는 특정 공원 이름과 날짜, 예상 인원을 적은 모집 글이 수십 건씩 올라와 있고, 일부 모임은 100명 가까운 인원이 몰려 조기 마감되기도 했다. 참가자 후기 영상은 인스타그램 등에서 수백만 회 조회수를 기록하며 확산 중이다.

핵심 인터페이스는 모바일 앱 기반 지역 매칭 기능이다. 사용자는 당근의 모임 메뉴에서 자신의 거주 지역과 관심사를 설정한 뒤, 시간과 장소가 맞는 경도 모임에 신청한다. 알림 기능과 채팅방을 통해 세부 규칙과 인원을 조율하고, 정해진 시간에 오프라인에서 실제 게임을 즐기는 구조다. 예전처럼 동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것이 아니라, GPS 기반 위치 정보와 시간표가 결합된 디지털 스케줄러가 새로운 놀이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참가자 반응은 높은 몰입감과 정신적 해방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모아진다. 후기에서는 어색함 우려와 달리 현장에서 이름도 잘 모르는 사람들과 짧은 시간 동안 강한 팀워크와 경쟁을 경험하게 된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갈수록 실내 중심, 디지털 중심 여가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전력 질주를 동반한 바깥 놀이가 스트레스 해소와 신체 활동 증가에 기여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신건강·행동의학 분야에서는 이런 집단 액티비티가 고립감 완화, 도파민 보상 체계의 건강한 활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특히 이번 경도 유행은 소셜 웰니스와 느슨한 연대라는 MZ세대 특유의 관계 키워드와 맞물려 있다. 소셜 웰니스는 타인과 맺는 관계의 양뿐 아니라 질을 중요하게 보는 개념으로, 비정기적이지만 심리적 안정과 활력을 주는 만남이 핵심으로 꼽힌다. 느슨한 연대는 학연이나 직장 중심이 아닌, 취미나 SNS 기반으로 이어지는 약한 연결망을 의미한다. 당근, 인스타그램 등 플랫폼은 이 약한 연결망을 물리적 만남으로 전환하는 브리지 역할을 하며, 사용자는 필요할 때 가볍게 합류하고 필요 없을 때 관계를 쉽게 정리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한다.

 

이와 같은 패턴은 경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서울 도심 와인바에서 대방어회를 매개로 그림과 시를 함께 만드는 파티, 책방에서 자유 대화를 나누는 모임 등 주제 중심의 단기 소셜 이벤트가 동네 단위로 빠르게 늘고 있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관심사, 시간대, 위치 데이터를 축적해 향후 맞춤형 모임 추천, 이용자 성향 분석, 상권 연계 서비스 설계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자산이 형성되는 구조다.

 

사회 구조 변화도 이런 오프라인 모임 확산의 배경으로 꼽힌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중은 36.1퍼센트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응답자의 절반은 일상에서 외로움을 경험한다고 답했다. 전통적 가족·직장 공동체가 약화된 자리를 모바일 기반 지역 커뮤니티가 대체하는 흐름이다. 특히 재택·플렉스 근무 확산으로 일터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던 사회적 교류가 줄어든 상황에서, 앱을 통한 계획된 만남이 일종의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에서는 이미 소셜 활동과 정신건강을 묶어 관리하는 서비스가 늘고 있다. 해외에서는 걷기·러닝 모임, 취미 모임을 데이터로 수집해 우울감, 번아웃과의 상관성을 추적하거나, 소셜 활동 빈도에 따라 맞춤형 상담·콘텐츠를 제공하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도 지역 기반 모임 플랫폼이 축적한 데이터가 향후 헬스케어 앱, 보험사, 지자체의 건강증진 프로그램과 결합될 여지가 존재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개인정보 보호와 안전 이슈는 꾸준한 관리 과제로 남는다. 위치 정보, 활동 기록, 모임 참여 이력 등을 어떤 범위까지 상업적 추천 알고리즘에 활용할지에 대한 투명한 설명과 동의 절차가 중요해지고 있다. 모르는 사람끼리 공공장소에서 만나는 구조인 만큼, 플랫폼의 신원 인증 강화, 신고·차단 시스템, 오프라인 안전 가이드라인 마련도 요구된다. 규제 당국은 아직 이러한 소셜 모임 플랫폼을 별도 규제 틀로 관리하고 있지는 않지만, 향후 데이터 활용 범위가 넓어질 경우 디지털 헬스케어, 위치기반서비스 관련 가이드라인과 접점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와 사회학자들은 지역 기반 온라인 서비스가 단순 거래·정보 교환을 넘어, 도시인의 정서적 공백을 메우는 실험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본다. MZ세대가 선택한 연말 경찰과 도둑 놀이는, 결국 기술이 인간의 오래된 놀이와 관계 욕구를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할지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산업계는 이러한 소셜 웰니스 흐름이 데이터 기반 서비스 혁신과 어떻게 접점을 찾을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술과 공동체 감수성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에 주목하고 있다.

윤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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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경찰과도둑#mz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