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1년, 동기는 여전히 안갯속”…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외환 혐의 줄소송
내란과 외환 혐의를 둘러싼 수사와 방어 전략이 정면 충돌했다. 조은석 특별검사가 이끄는 특검팀이 비상계엄 선포 1년을 앞두고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롯한 핵심 인사들을 대거 재판에 넘기면서 정치권과 사법부가 동시에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지난 6월 18일 수사에 착수한 뒤 세 차례 수사 기한을 연장했고, 오는 14일 수사 종료를 앞둔 현재까지 계엄과 관련한 내란·외환 혐의의 큰 줄기를 상당 부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계엄 선포의 동기와 김건희 여사의 개입 여부 등 핵심 쟁점은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특검팀은 우선 비상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 상황과 국무위원 등 고위 관계자들의 공모 여부, 대응의 적정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 그 결과 이른바 계엄 국무회의 과정과 계엄 후속 조처를 둘러싸고 내란 방조와 가담 혐의가 확인됐다고 보고 관련자 기소에 나섰다.
조사 결과 특검팀은 계엄 국무회의에 참석한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내란 방조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또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 지시 등 비상계엄 후속 조치에 순차적으로 가담한 혐의를 받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합동수사본부에 검사 파견을 검토하고, 교정시설 수용 여력 점검과 출국금지 담당 직원 출근 등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도 특검 수사 대상이 됐다. 그는 두 차례 구속영장이 기각된 끝에 불구속기소 처리됐다.
또한 내란 행위를 저지하거나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국회에 보고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은 구속기소됐다. 특검팀은 조 전 원장이 헌법기관 간 견제와 통제 기능이 작동하지 못하도록 방치하거나 방조했는지 여부에 수사력을 모았다고 전했다.
정치권의 움직임도 수사 선상에 올랐다. 당시 여당 원내대표였던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 특검팀은 계엄 선포 직후 윤 전 대통령 측 요청을 받고 의원총회 장소를 여러 차례 변경하는 방식으로 계엄 해제 표결 참여를 방해한 혐의를 수사 중이다. 특검팀은 오는 2일 예정된 추 의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 국회 표결 과정에 대한 조직적 개입 의혹과 구속 필요성을 법원에 소명할 계획이다.
내란 수사만큼 파장이 큰 부분은 외환 의혹이다. 특검팀은 비상계엄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북한을 자극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다는 의혹과 관련해 윤석열 전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을 일반이적 등 혐의로 기소했다. 전직 대통령이 외환죄 관련 죄명으로 재판에 서는 것은 처음이다.
검찰 특별수사본부에서 시작된 내란 사건과 달리 외환 의혹은 특검이 자체적으로 수사에 착수해 종결 단계까지 끌고 온 사안이다. 이에 따라 윤 전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이자 일반이적 행위의 주동자로 법정에 서게 됐다. 조은석 특검이 이끄는 수사가 단순한 권력형 비리 차원을 넘어 헌정 질서를 뒤흔든 중대한 범죄 구조를 겨냥했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그러나 5개월이 넘는 고강도 수사에도 풀리지 않은 물음은 여전하다. 가장 큰 공백으로 지적되는 지점은 계엄 선포에 이르게 된 동기가 뚜렷하게 규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윤 전 대통령 측은 특검과 언론을 통해 야당의 폭거에 대응하기 위한 경고성 조처였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비상권력 행사를 염두에 둔 정황을 다수 확보했다고 보고 있다.
특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공소사실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의 비상대권 언급은 취임 후 6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포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일반이적 혐의 공소장에는 2022년 11월 25일 국민의힘 지도부에게 나에게는 비상대권이 있다, 내가 총살당하는 한이 있어도 싹 쓸어버리겠다고 말했다는 대목이 담겼다.
특검팀은 이 같은 발언을 윤 전 대통령이 정권 위기와 사법 리스크를 돌파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지를 비상계엄에서 찾은 정황으로 해석하고 있다. 수사팀은 명태균 게이트 등으로 국정 운영이 흔들리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명품가방 수수 의혹 등으로 김건희 여사의 사법 리스크가 본격화하자 소위 친위 쿠데타를 통한 장기 집권 플랜을 구상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드러냈다.
최근 수사가 진행 중인 김 여사 셀프 수사 무마 의혹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검팀은 비상계엄 모의가 본격화하던 지난해 5월을 전후해 윤 전 대통령 부부와 박성재 전 장관이 텔레그램 등 메신저와 통화를 통해 수시로 연락한 내역을 확보했다. 이 시기는 이원석 당시 검찰총장이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에게 김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 전담팀 구성을 지시하고, 그 여파로 법무부가 서울중앙지검 간부와 대검찰청 참모진 인사를 대폭 교체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김 여사를 불기소 처분한 지난해 10월 17일에도 박 전 장관과 윤 전 대통령 사이에 텔레그램 메시지 송수신과 통화가 이어진 정황도 확인됐다. 특검팀은 이런 통신 기록과 인사 흐름을 근거로 윤 전 대통령 부부와 박 전 장관을 정치적 운명 공동체로 규정하고 수사 범위를 넓히고 있지만, 아직은 사실관계 규명이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설명했다.
김건희 여사가 비상계엄 선포 전후 의사 결정 과정에 어느 수준까지 관여했는지 밝히는 일도 남은 과제로 꼽힌다. 계엄 동기와 김 여사의 개입 여부는 내란과 외환 의혹의 정치적 성격과 책임 범위를 가늠하는 핵심 쟁점이어서 향후 재판 과정에서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외환 의혹의 세부 내용도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 과정에서 주요 정치인과 진보 성향 인사 명단, 수거 대상 처리 방안 등 문구가 적힌 일명 노상원 수첩이 확보됐지만,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지시 체계가 어느 정도까지였는지에 대해선 실체 규명이 더 필요하다는 평가다.
군사적 긴장 조성 의혹 역시 마찬가지다. 아파치 무장 헬기를 출동시켜 북방한계선 인근에서 위협 비행을 했다는 주장과 관련해 특검팀은 일정 부분 사실관계를 확인했으나, 작전의 최종 승인 라인과 정치적 기획 여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로 남았다. 지난해 11월 정보사 요원이 주몽골 북한대사관 접촉을 위해 공작을 벌이다 몽골 정보기관에 적발된 사건도 외환 의혹과 어떤 구조적 연관성이 있는지 전체 그림은 아직 그려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특검팀 관계자는 외환 의혹과 관련해 여러 의혹이 복수의 인물과 기관을 통해 얽혀 있어 전체적인 조망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각 에피소드별 사실관계는 상당 부분 확인됐지만, 이를 하나의 정치·군사 전략으로 묶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재판 과정과 추가 수사가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의 반응과 향후 파장도 예의주시되는 대목이다. 여권에선 전직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이자 일반이적 주동자로 규정한 특검 수사가 과도한 정치 보복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고, 야권은 헌정 질서를 뒤흔든 중대 범죄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며 공세 수위를 높이는 모양새다. 헌법기관과 군, 정보기관이 동시에 연루된 중대 사안인 만큼 향후 국회 차원의 추가 진상 규명 요구와 제도 보완 논의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조은석 특검팀의 수사 기한은 14일까지다. 특검팀은 남은 기간 계엄 동기와 외환 의혹의 미진한 부분을 최대한 보완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시간과 인력 한계로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사건은 경찰 국가수사본부에 넘겨 후속 수사가 이어지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은 계엄 1년을 둘러싼 책임 공방과 제도 개선 논의를 두고 정면 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