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퍼즐 같은 심리전과 서늘한 반전의 10년→엘리펀트 송 10주년 장기 공연의 깊은 서사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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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는 계절, 극장가에 다시 불어오는 ‘엘리펀트 송’의 바람은 오래된 우정처럼 각별하다. 10년의 시간을 헤치고 돌아온 이 연극은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긴 호흡의 대장정으로 무대를 밝힌다. 미묘한 시선과 날카로운 대사, 감춰진 사연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관객들은 마치 병원 복도 한가운데서 인물들 곁을 걷고 있는 듯한 서늘한 몰입과 서사적 울림을 마주하게 된다.

 

연극 ‘엘리펀트 송’은 실종된 의사 로렌스의 행적을 둘러싼 병원장 그린버그, 환자 마이클, 그리고 수간호사 피터슨의 엇갈린 대화 속에 치밀한 심리 게임을 펼친다. 이야기는 퍼즐처럼 맞물리는 세 인물의 미묘한 긴장과 숨은 감정선에 방점을 둔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진실과 반전은 마치 가을밤 창가를 적시는 빗방울처럼 관객의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캐나다 작가 니콜라스 빌런의 데뷔작답게 서사 구조의 정교함이 돋보이고, 자비에 돌란의 얼굴로 알려진 영화와는 또 다른 무대 예술의 본질이 살아난다.

출처=나인스토리
출처=나인스토리

10주년 기념으로 마련된 이번 장기 공연은 역대 최대 규모의 캐스팅을 자랑한다. 박은석, 김지온, 유현석, 이재균, 김현진, 정휘, 윤재호, 곽동연이 마이클 역에 이름을 올리고, 이석준, 고영빈, 정원조, 정상윤, 박정복이 병원장 그린버그로 무대를 채운다. 수간호사 피터슨은 정재은, 고수희, 이혜미, 이현진이 연기하며, 이들 중 고영빈, 정상윤, 박정복, 정재은, 고수희, 이혜미, 이현진은 11월 22일부터 2026년 3월 8일까지 장기 출연을 이어가 극의 심장으로 남는다.

 

관객들의 오랜 기억에 응답하듯, 김지호 연출이 다시 지휘봉을 잡으며 10년의 역사가 깃든 배우들과 새로운 얼굴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시간의 무게와 세월의 흔적이 깊게 스민 대사와 연기는 다시 한번 한 편의 서사시로 완성된다. 무엇보다 한때 무대를 떠났던 초연 멤버들의 복귀는 연극 팬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남기며, 새로운 배우들의 신선한 에너지는 익숙한 작품에 또 다른 결을 입힌다.

 

관객들은 세 인물의 팽팽한 심리전 속에서 인간의 여린 내면, 기억의 모호성을 마주하게 된다. “한순간, 모든 것이 뒤집힌다”라는 명대사는 10년의 시간만큼이나 길고 깊게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한 관람객은 “이 연극을 볼 때마다 지나온 계절과 마음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며 특별한 감정을 전했다. 연출과 배우들이 쌓아 올린 10년의 서사는 다시 한 번 대학로 무대 위에서 수많은 밤, 관객과 햇살을 나눈다.

 

2025년 11월 22일부터 2026년 3월 8일까지 이어지는 이 대장정은 겨울마다 슬며시 생각나는 ‘엘리펀트 송’만의 서늘하고 조용한 감정선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깊은 겨울의 파도처럼 밀려오는 울림 속에서 관객은 자신만의 질문과 위로를 품게 된다.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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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송#박은석#김지호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