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PBR 0.35배 자산주 반란…서부T&D, 자사주 소각·호실적에 21% 급등

배주영 기자
입력

서부T&D 주가가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 호텔 사업 호황에 따른 실적 턴어라운드가 겹치며 12일 코스닥 시장에서 전일 대비 21.19% 급등한 1만 4,070원에 마감했다. 극단적 저평가 상태였던 자산주의 펀더멘털 개선이 확인되자 기업 가치 재평가 기대가 커지면서, 단기 이벤트를 넘어 구조적 주가 재평가 국면에 진입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서부T&D 주가는 이날 시가 1만 1,760원으로 출발해 장중 내내 상승 흐름을 이어가며 한때 1만 4,290원까지 치솟았다. 최근 한 달간 1만 1,000원대 박스권에 머물던 주가가 단 하루 만에 두터운 매물대를 돌파하면서 신고가 영역을 향한 랠리에 시동을 건 모습이다. 거래량은 1,435만 주로, 전일 57만 주 대비 약 25배, 비율로는 2,400% 이상 폭증해 수급 에너지가 강하게 유입됐음을 보여줬다.

[분석] PBR 0.35배의 반란… 서부T&D, 자사주 소각·호실적 업고 '21% 폭등' (제공:AI제작)
[분석] PBR 0.35배의 반란… 서부T&D, 자사주 소각·호실적 업고 '21% 폭등' (제공:AI제작)

이번 급등의 직접적 촉매는 전일 발표된 주주환원 정책이다. 서부T&D는 자사주 50만 주 소각과 주당 100원의 현금 배당을 결정해 공시했다. 시가총액 약 9,205억 원(12일 기준), 상장주식수 6,542만 주 규모에서 자사주 소각은 주당 가치 희석 우려를 낮추고 주주 친화 경영 의지를 부각시키는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배당수익률은 약 0.71% 수준이지만, 그간 낮았던 배당 성향이 개선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해석되며 투자 심리를 자극했다.

 

수급 측면에서도 질적 변화가 감지됐다. 최근 외국인 보유율이 16%대와 18%대 사이를 오가던 가운데, 이날 장중에는 기관과 외국인이 동반 매수에 나선 것으로 시장은 파악하고 있다. 매수 상위 창구에 키움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개인 비중이 높은 증권사와 함께 기관성 자금 유입 징후가 보인 점이 특징이다. 시장에서는 단기 차익 실현 물량을 기관·외국인이 흡수하며 하방을 지지하는 동시에 추가 상승 여력을 키웠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동종 레저·호텔·카지노 업종과 비교해도 상승 탄력은 두드러졌다. 이날 강원랜드는 0.11% 하락했고, 롯데관광개발은 4.76%, 파라다이스는 1.19% 상승에 그쳤다. 반면 서부T&D는 20%를 훌쩍 웃도는 상승률을 기록하며 업종 내 주도주 지위를 부각시켰다. 유통 주식이 적지 않은 종목임에도 거래 회전율이 크게 높아진 점은 단기 수급 집중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본 체력 관점에서 서부T&D는 대표적인 저PBR 자산주로 분류돼 왔다. 2024년 결산 기준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35배 수준으로, 보유 부동산 등 자산 가치를 감안할 때 청산 가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럼에도 올해 예상 매출액은 1,874억 원, 영업이익은 479억 원으로 추정되며, 2025년에는 영업이익이 620억 원까지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돼 있다. 특히 EPS(주당순이익)가 전년 대비 흑자 전환에 성공한 점은 이익 체력이 본격적으로 개선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적 개선의 배경에는 관광호텔업 회복이 자리한다. 서부T&D의 호텔부문 매출 비중은 약 72%로, 외국인 관광객 증가와 객실 단가 인상 효과를 온전히 누리고 있다. 서울 용산에 위치한 서울드래곤시티의 높은 가동률이 레버리지 효과를 키우며 영업이익 개선을 견인했고, 나인트리호텔 동대문 매각 추진 소식은 자산 유동화를 통한 추가 현금 창출 가능성으로 연결됐다. 여기에 중국인 무비자 입국 허용, K컬처 확산에 따른 한국 방문 수요 확대가 겹치며 내년 실적 전망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정책·테마 측면에서는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 기조와 맞물려 자산주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서부T&D가 이 시점에 자사주 소각을 발표한 것은 보유 부동산 가치를 반영한 기업 가치 재평가 요구에 호응한 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용산 등 주요 입지에 보유한 대규모 부동산 자산은 금리 안정과 유동성 회복 국면에서 재조명을 받는 대표 테마다. 시장에서는 리오프닝과 밸류업, 자산주 리레이팅이 겹치는 교차점에서 서부T&D의 스토리가 강화되고 있다고 본다.

 

사업 구조 역시 성장성과 안정성이 조합된 형태로 평가된다. 호텔업의 고성장과 더불어 물류·쇼핑몰 사업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제공해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완화하고 있다. 다만 경쟁사와 비교할 때 아직 배당수익률이 낮은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이번 자사주 소각·배당 확대를 계기로 배당 성향이 추가로 올라갈 수 있다는 기대가 형성되면서 밸류에이션 할인을 축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ROE(자기자본이익률)는 2023년 17.98%를 기록한 이후 올해 일시 조정이 예상되지만, 내년부터는 실적 성장과 함께 재차 안정적인 흐름을 보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다만 투자 전략 측면에서는 단기 급등에 따른 변동성 확대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주가가 하루 만에 20% 넘게 치솟으며 1만 4,000원대에 안착했지만, 기술적 분석상 1만 2,500원 전후 가격대가 1차 지지 구간으로 거론된다.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 구간을 지키면 상승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지지선이 무너질 경우 차익 실현과 수급 이탈이 겹쳐 조정 폭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장기적으로는 내년 예상 실적 기준 서부T&D의 PER이 19배 수준으로 내려가고, PBR이 0.7배 수준까지 정상화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 제시된다. 이에 따라 단기 과열 국면에서의 무리한 추격 매수보다는 조정 시 분할 매수 전략이 유효하다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호텔업 특성상 글로벌 경기, 환율, 지정학 리스크에 민감한 만큼 향후 인바운드 수요 흐름과 환율 수준을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뒤따른다.

 

부동산 자산 가치 재평가가 이미 주가에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나인트리호텔 동대문 매각 등 자산 매각이 실제로 얼마만큼의 현금 유입과 재무구조 개선으로 이어질지, 추가 개발 계획이 구체화될지 여부에 따라 밸류에이션이 다시 조정될 수 있다. 시장에서는 향후 서부T&D가 추가적인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 확대 등 후속 주주환원 정책을 내놓을지, 정부 밸류업 가이드라인에 맞는 행동 계획을 제시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향후 서부T&D 주가 흐름은 인바운드 회복 속도, 정부 밸류업 정책 구체화 수준, 글로벌 금리·환율 여건 등 복합 변수에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투자자들은 높은 변동성과 정책·수급 변수에 유의하면서, 자산주 리레이팅 흐름이 실적과 현금 흐름 개선으로 이어지는지 여부를 지속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배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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