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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물방울 공기청정 기술…KAIST, 필터 없는 초미세먼지 제거로 에너지 절감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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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 물방울을 활용한 물 기반 공기정화 기술이 필터 없는 초미세먼지 제거를 가능하게 하며 공기청정기 산업의 에너지 효율 경쟁을 자극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 KAIST 연구진이 개발한 공기정화 장치는 PM0.3 이하 극초미세먼지까지 제거하면서도 오존을 만들지 않고 스마트폰 충전기보다 낮은 전력으로 작동해 차세대 실내 공기 관리 기술로 주목받는다. 업계에서는 이번 성과가 필터 소재 중심이던 기존 공기청정기 시장 구도를 바꾸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KAIST는 신소재공학과 김일두 교수와 기계공학과 이승섭 교수 공동연구팀이 나노 물방울이 먼지를 흡착하는 정전분무 기술과 스스로 물을 끌어올리는 나노 스펀지 구조를 결합한 물 기반 공기청정 기술을 개발했다고 8일 밝혔다. 핵심은 필터를 사용하지 않고도 공기 중 미세먼지를 전기적으로 대전된 초미세 물방울에 달라붙게 한 뒤, 이 물방울을 회수해 공기를 정화하는 구조다.

연구팀이 선보인 장치는 물 정전분무 기반 공기정화 장치로, 머리카락 굵기의 약 2백분의 1 수준인 지름 0.3마이크로미터 이하 PM0.3 극초미세먼지까지 신속하게 제거하는 성능을 보였다. 실험실 0.1세제곱미터 챔버 환경에서 PM0.3부터 PM10 범위의 입자에 대해 20분 이내 99.9퍼센트 제거율을 기록했으며, 특히 기존 필터식 공기청정기가 처리하기 어려운 PM0.3 입자는 5분 만에 97퍼센트를 제거했다.

 

이 기술의 기반에는 이승섭 교수 연구팀의 오존 없는 물 정전분무 기술과 김일두 교수 연구팀의 고흡습 나노섬유 기술이 결합돼 있다. 정전분무는 고전압 전극에 의해 물을 미세한 전하를 띤 물방울로 분사하는 방식으로, 물방울 표면에 전하가 집중되면서 공기 중 입자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효과를 갖는다. 일반적인 코로나 방전 방식 공기정화 장치는 오존이 함께 발생하는 부작용이 있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전극 구조와 분무 조건을 제어해 오존 발생을 억제했다는 설명이다.

 

또 하나의 축은 스스로 물을 끌어올리는 나노 스펀지 구조다. 장치 내부에는 고흡습 나노섬유로 만든 흡수체와 미세 폴리머 채널이 배치돼 있다. 나노섬유는 표면적이 매우 넓고 물을 잘 머금는 성질을 가지며, 폴리머 미세채널은 모세관 현상을 이용해 물을 위쪽으로 이동시킨다. 이 조합으로 별도의 펌프 없이도 물이 자동 순환되는 자기펌핑 구조가 구현돼 장시간 안정적인 정전분무를 유지한다.

 

연구팀은 내구성과 전력 소모 성능도 함께 검증했다. 30회 연속 제어 테스트와 50시간 연속 구동 시험에서 먼지 제거 효율 저하가 관찰되지 않았고, 소모 전력은 약 1.3와트 수준으로 측정됐다. 이는 일반 HEPA 필터 기반 가정용 공기청정기의 약 20분의 1 수준으로, 공기 흐름을 막는 필터가 없어 압력 손실과 소음이 크게 줄어든 결과로 풀이된다.

 

시장성과 활용 측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필터가 필요 없다는 점이다. 기존 공기청정기는 필터 교체 주기와 비용, 폐필터 폐기 문제 등이 소비자 불만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이번 물 기반 장치는 분무에 사용되는 물만 주기적으로 보충하면 되기 때문에 유지비가 낮고, 필터 폐기물이 발생하지 않아 환경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저전력 구동 특성은 장시간 켜두는 실내 공기질 관리 기기에서 전기료 부담을 완화하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연구진은 활용 분야를 실내 공기청정기 시장을 넘어 차량용, 반도체 공정 등에 사용되는 클린룸, 휴대용 기기, 웨어러블 공기정화 모듈까지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고성능 HEPA 필터가 차지해온 초미세먼지 정화 영역에서, 필터리스 구조와 매우 낮은 소비전력을 내세운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점에 업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공기청정기와 공기질 관리 솔루션이 에너지 효율과 저소음, 친환경을 핵심 경쟁 요소로 내세우는 추세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고성능 필터를 사용하면서도 전력소비를 줄인 제품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지만, 필터 자체를 제거한 물 기반 정전분무형 상용 제품의 등장은 아직 제한적이다. 이번 KAIST 기술이 실제 제품으로 자리 잡을 경우, 국내 업체가 초저전력 필터리스 공기정화 분야에서 선도 입지를 확보할 여지가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상용화를 위해서는 안전성과 규제 이슈도 관건이 될 전망이다. 공기정화 장치는 실내 공기질 관련 인증과 전기 안전 규격을 모두 충족해야 하고, 물을 사용하는 구조에서는 미생물 번식과 누수 방지 설계가 필수적이다. 연구진은 오존이 발생하지 않는 정전분무 구조를 채택한 만큼 인체 유해 가스 문제를 피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실제 제품 단계에서는 장기간 사용 환경에서의 위생 관리와 유지보수 체계를 추가로 검증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 출판사 와일리가 발간하는 재료과학 및 나노기술 분야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티리얼즈에 지난달 14일자로 게재됐다. 학계에서는 나노섬유 기반 자기펌핑 구조와 무오존 정전분무를 결합한 점을 공기정화 기술 설계의 새로운 방향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기술 사업화는 이승섭 교수가 참여한 KAIST 기반 창업기업 A2US가 맡고 있다. A2US는 이 기술을 적용한 공기정화 솔루션으로 CES 2025 혁신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내년 제품 출시를 목표로 양산 설계와 인증 준비를 병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에너지 비용과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이 같은 필터리스 초저전력 공기정화 기술이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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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김일두교수#이승섭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