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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보아 200례 달성한 단국대병원 응급외상 패러다임 바꾼다

윤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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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맥내 풍선폐쇄소생술로 불리는 레보아 기술이 국내 응급외상 진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단국대병원이 특정 의료기관으로는 처음으로 레보아 200례를 달성하면서, 출혈성 쇼크 환자를 살리는 차세대 중재기술의 임상적 효용성과 표준화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이번 성과를 외상 진료 체계 고도화와 디지털 기반 응급의료 인프라 전환을 가속할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단국대병원은 28일 자 기준으로 레보아 시술 200례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국내 의료기관 중 최초로 기록한 성과로, 단일 센터에서 이 정도 규모의 레보아 시술을 축적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병원은 전날 암센터 회의실에서 김재일 병원장과 주요 보직자가 참석한 가운데 레보아 200례 달성 기념 행사를 열고, 중증외상 및 대량출혈 환자 치료 패러다임 변화의 의미를 공유했다.

레보아는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등으로 복부와 골반, 하반신에서 대량 출혈이 발생한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고난도 응급 시술이다. 대퇴부 동맥을 통해 특수 카테터와 풍선을 대동맥 안으로 삽입한 뒤, 출혈 부위 상단에서 풍선을 부풀려 혈류를 일시 차단한다. 이 과정을 통해 심장과 뇌 등 핵심 장기로 향하는 혈류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실제 출혈 부위를 수술로 지혈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 원리다. 출혈성 쇼크로 심정지 직전 상태에 몰린 환자에게도 적용 가능한 시술인 만큼, 외상중환자 진료 영역에서 기술적 난도가 상당한 의료 행위로 분류된다.

 

특히 이번 성과는 레보아가 중증외상 영역을 넘어 대동맥류 파열과 산후 대량 출혈 등 다양한 임상 상황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단국대병원에 따르면 레보아로 생명을 건진 환자군은 운수업이나 기간산업 현장에서 둔상 외상을 입은 50대 남성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동시에 파열성 대동맥류 환자와 산후 대량출혈 산모에게도 시술이 성공적으로 적용되면서, 기존 수술 중심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컸던 상황에서 새로운 구명 옵션으로 자리 잡는 추세다.

 

레보아의 실효성은 시술자의 경험과 병원 시스템 역량에 크게 좌우된다. 혈역학 상태가 급변하는 응급상황에서 대동맥 내부 특정 구간에 정확히 풍선을 위치시키고, 차단 시간과 압력을 정밀하게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국대병원은 2016년 장성욱 충남권역외상센터장이 국내에 레보아 시술을 처음 도입한 이후, 전국 외상센터를 대상으로 교육 코스를 개발하고 직접 기술을 전파해 왔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장 센터장을 레보아의 문익점에 비유하며, 국내 레보아 보급과 표준화의 기점으로 평가한다.

 

단국대병원은 임상 경험 축적에 그치지 않고, 전국 5개 권역외상센터와 함께 다기관 연구를 주도해 레보아의 효과를 정량적으로 입증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다기관 후향 분석과 임상 결과 비교를 통해 레보아가 중증외상 환자의 생존율 향상에 기여한다는 과학적 근거를 마련해, 기술 도입 타당성을 둘러싼 논의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는 출혈성 쇼크 환자에서 특정 중재술의 유효성을 다기관 수준에서 검증한 국내 대표 사례로 꼽힌다.

 

글로벌 외상진료 현장에서도 레보아는 기존 개흉식 대동맥 겸자술에 비해 덜 침습적이면서, 현장 적용성이 높은 기술로 평가받는다. 미국과 유럽의 외상센터들은 군 전장 외상과 대량재난 상황에서 레보아 프로토콜을 확대 적용하고 있으며, 장비와 시술 표준을 둘러싼 경쟁도 진행 중이다. 다만 시술 난도와 합병증 우려, 교육 체계 미비 등을 이유로 활용이 제한적인 기관도 적지 않아, 고용량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가이드라인 구축이 국제적 과제로 남아 있다. 단국대병원의 200례 경험은 이런 글로벌 논의에서 한국형 외상진료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참고 사례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단국대병원은 레보아 시술 경험을 기반으로 하이브리드 ER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ER은 응급실 내에 영상 장비와 혈관중재, 수술 기능을 통합해 중증외상 환자가 응급실을 떠나지 않고도 영상 진단과 중재 시술, 수술까지 연속 수행할 수 있게 하는 구조다. 여기에 레보아를 결합하면 도착 직후 혈역학 안정화와 지혈, 수술 전 환자 최적화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어, 골든타임을 앞당기고 사망률을 줄일 수 있는 시스템으로 평가된다.

 

병원은 또 국내 상황에 맞는 레보아 임상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AI 기반 응급 대응 시스템과 결합하는 작업도 병행할 계획이다. 구급 이송 단계에서 수집되는 바이탈 사인과 손상 기전, 영상 정보 등을 AI가 실시간 분석해 레보아 필요성을 조기에 분류하고, 도착 전 외상팀이 시술 준비를 마칠 수 있게 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이런 디지털 기반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이 구축되면, 시술 적기 판단의 편차를 줄이고 지방 중소병원과 상급 외상센터 간 연계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장성욱 충남권역외상센터장은 레보아가 출혈성 쇼크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진료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200례 데이터를 토대로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표준 프로토콜을 국내에 확산시키겠다고 밝혔다. 김재일 병원장은 외상센터 의료진의 헌신과 지역사회 협력을 성과의 배경으로 꼽으며, 전국구 권역외상센터로서 최상의 외상 진료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응급의료와 외상 분야 전문가들은 레보아와 같은 고난도 중재술이 하이브리드 ER와 AI 기반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 등 디지털 인프라와 결합될수록, 향후 국내 외상 사망률을 구조적으로 낮추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동시에 레보아 도입 효과를 전국 단위로 확산하려면 권역외상센터 간 인력 격차 해소, 교육 표준화, 보험 수가 체계 정비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단국대병원의 레보아 200례 성과가 고위험 응급의료 영역에서 새로운 치료 표준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윤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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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병원#레보아#충남권역외상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