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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난방이 숙면 막는다"…의료계, 심부체온 관리 강조

최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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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수면장애가 기온 자체보다 실내 환경과 생체리듬 교란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 것으로 의료계가 설명한다. 기온이 떨어지면 난방 사용이 늘어나는데, 실내 온도가 과도하게 높아지면 잠들기 직전 떨어져야 할 심부체온이 내려가지 못해 입면이 지연되고, 깊은 잠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겨울철 일조량 감소로 인한 세로토닌과 멜라토닌 분비 리듬 붕괴가 겹치며, 계절성 수면장애가 두드러지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의료계는 적정 온습도 유지와 저녁 시간 체온·빛 노출 관리가 겨울철 수면 문제를 줄이는 핵심 전략으로 보고 있다.

 

겨울철 환자들이 호소하는 대표적인 증상은 잠들기까지 시간이 길어지거나 밤중에 여러 차례 깨는 것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난방이 과한 실내에서 장시간 지내면 피부 쪽 말초혈관이 지나치게 확장돼 열 배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그 결과 심부체온이 높게 유지된다. 심부체온은 심장, 폐, 간, 신장 등 내부 장기가 위치한 몸속 깊은 곳의 온도로, 깨어 있는 동안에는 에너지 소비를 위해 높게 유지되다가 잠들기 직전에 떨어지면서 신체가 안정 상태로 전환된다. 이 하강 과정이 막히면 뇌는 여전히 각성 상태로 인식해 수면으로의 전환을 원활히 진행하지 못한다.

정상적인 수면 과정에서는 24시간 주기로 반복되는 일중리듬에 따라 저녁 시간에 심부체온이 약 0.5도에서 1도 정도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때 뇌에서는 수면 호르몬으로 알려진 멜라토닌 분비가 촉진돼 신체와 뇌의 활동 수준이 동시에 줄어들며, 깊은 수면 단계로 진입할 준비가 시작된다. 의료진은 낮아진 심부체온이 수면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깊은 수면 비율을 높이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만큼, 겨울철에도 이 자연스러운 온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실제 온도·습도 설정은 수면의 질과 직결된다. 겨울철 숙면을 위해 권장되는 실내 온도는 18도에서 22도 수준이다. 이 범위에서는 신체의 체온조절 기능이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해, 잠들 무렵 심부체온이 무리 없이 떨어질 수 있다. 손여주 이대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적절한 환경 온도에서 잠이 들면 심부체온이 자연스럽게 하강하며 수면으로의 진입이 수월해진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실내 온도가 지나치게 낮으면 체온 유지를 위해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되고, 미세한 떨림과 근육 긴장이 증가해 밤사이 자주 깨는 등 수면의 연속성이 떨어질 수 있다.

 

습도도 중요한 변수다. 손 교수는 수면 환경의 적정 습도로 40퍼센트에서 60퍼센트 범위를 제시했다. 습도가 40퍼센트 아래로 떨어지면 호흡기 점막이 마르고 상기도가 자극을 받아 코막힘과 기침이 심해지며, 수면 중 호흡장애 악화로 산소포화도가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 그 결과 야간 각성 빈도가 증가하고,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이 있는 경우 증상이 두드러질 수 있다. 반대로 60퍼센트를 넘는 높은 습도는 곰팡이와 먼지진드기 증식을 촉진해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늘리고, 호흡곤란과 코막힘을 통해 깊은 수면 비율을 감소시키는 요인이 된다.

 

온습도 관리와 더불어 생활 습관 조절도 겨울철 수면장애 예방에 중요하다. 손 교수는 취침 1시간에서 2시간 전에 38도에서 40도 정도의 미온수로 가볍게 목욕이나 족욕을 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말초혈관이 확장돼 체표면 쪽으로 열이 이동하게 된다. 이후 비교적 시원한 침실로 이동하면 피부에서의 열 방출이 촉진되면서 심부체온이 점진적으로 감소하고, 이 과정이 자연스럽게 수면 유도 신호로 작용한다. 이러한 체온 변화는 신체의 일중리듬과도 맞물려, 밤 시간에 맞는 심부체온 하강 곡선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겨울철에 특히 문제가 되는 요소는 일조량 감소다. 낮 동안 햇빛 노출이 줄어들면 세로토닌 합성이 떨어지고, 이 호르몬을 바탕으로 밤에 분비되는 멜라토닌의 리듬도 불안정해지기 쉽다. 전문가들은 가능한 한 낮 시간대에 자연광에 노출되는 시간을 확보해 생체시계를 아침에 강하게 리셋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반면 저녁 시간에는 스마트폰, 태블릿, TV 등에서 나오는 강한 청색광 노출을 줄이고, 침실 조명을 어둡고 안정된 수준으로 유지해야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되지 않는다.

 

수면환경 조절은 단순한 편안함을 넘어 전신 건강과 정신건강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기초 관리 영역으로 평가된다. 손여주 교수는 겨울철 숙면의 핵심을 심부체온이 자연스럽게 떨어질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체온의 항상성이 깨질 경우 몸과 마음의 리듬이 동시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적정 실내 온도·습도 유지와 일상적인 수면 위생 관리를 통해 체온 리듬을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의료계는 겨울 수면장애를 단기 불편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장기적인 만성질환과 정신건강 악화로 이어질 수 있는 신호로 인식하고 환경과 생활습관을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산업계는 이러한 의학적 인사이트를 반영한 스마트 온습도 제어, 광환경 조절, 수면 모니터링 기술 수요가 커질 수 있을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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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여주#이대서울병원#수면장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