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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직접전환 NK 세포 플랫폼…생명硏, 난치암 공략 새 해법 제시

문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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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전환 기반 차세대 면역세포 기술이 난치암 치료 패러다임을 겨냥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개발한 직접 전환 NK 세포는 줄기세포 단계를 생략해 환자 유래 세포를 곧바로 고기능 면역세포로 바꾸는 개념으로, 고형암 중심의 면역치료 한계를 보완할 플랫폼으로 평가된다. 업계와 연구계에서는 췌장암을 대상으로 한 초기 효능 입증이 NK 세포 치료제 경쟁 구도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면역치료제연구센터 조이숙 박사 연구팀은 체세포를 직접 NK 세포로 바꾸는 직접 리프로그래밍 방식으로 새로운 형태의 NK 세포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고 18일 밝혔다. 연구팀은 피부나 혈액 등에서 얻은 일반 체세포에 유전자 조절 기술을 적용해, 분화 잠재력이 넓은 줄기세포 단계로 되돌리지 않고 곧바로 NK 세포로 전환하는 공정을 확립했다. 새로 제작된 세포는 암세포 살상 능력과 체내 지속성이 동시에 향상된 것으로 나타나 drNK라는 이름으로 명명됐다.

연구 핵심은 NK 세포로의 분화를 막는 역할을 하는 특정 전사조절 유전자인 BCL11B를 정밀 조절해, 체세포의 운명을 단기간에 NK 계열로 재설정했다는 점이다. BCL11B는 원래 T 세포 계통 분화에 관여하는 인자로 알려져 있는데, 연구팀은 이 인자의 조절을 통해 T 세포 쪽으로의 경로를 억제하고 NK 세포 특성을 강하게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 설명에 따르면 이 접근으로 제작 시간과 공정 복잡도가 줄어들면서 기능이 증강된 NK 세포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drNK 세포는 기존 NK 세포 치료제가 갖던 구조적 한계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전통적인 NK 세포는 체내에 투여된 후 생존 기간이 짧고, 종양 미세환경으로 불리는 암 조직 주변의 면역억제성 환경 속에서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또한 딱딱하게 뭉쳐 있는 고형암 조직 안으로 깊숙이 침투하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돼 왔다. 전임상 실험에서 drNK 세포는 동일 조건의 기존 NK 세포 대비 암세포 살상 효율과 체내 지속성이 모두 개선된 것으로 나타나, 종양 침투와 장기 작동 측면에서 경쟁력을 보여줬다.

 

연구팀은 기술 실효성을 검증하기 위해 대표적 난치암인 췌장암을 모델로 선택했다. 췌장암은 주변에 섬유화와 면역억제 세포가 밀집한 강력한 방어 장벽을 형성해 면역세포가 종양 내부로 진입하기 어렵고, 현재 상용화된 면역관문억제제 등 기존 면역항암제도 충분한 효과를 내지 못하는 암종으로 꼽힌다. 연구팀은 이러한 특성에 맞춰 drNK 세포를 바탕으로 표적성과 투과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전략을 설계했다.

 

우선 drNK 세포 표면에 CAR라 불리는 키메라 항원 수용체를 도입해 췌장암 세포를 보다 선택적으로 인식하도록 했다. CAR는 항체의 표적 인식 영역과 T 세포 또는 NK 세포의 신호전달 도메인을 결합한 합성 수용체로, 특정 항원을 발현하는 세포만 골라 공격하도록 면역세포를 재설계하는 기술이다. 연구팀은 췌장암 세포 표면에 많이 발현돼 있는 메소텔린을 표적으로 삼아, 메소텔린 특이 CAR를 drNK에 탑재한 MSLN drNK 세포를 구현했다. 이 맞춤형 세포는 시험에서 메소텔린을 발현하는 췌장암 세포에 선택적으로 결합해 공격하는 양상을 보이며, 비표적 세포에 대한 비의도적 독성을 줄이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여기에 연구팀은 암세포 스스로가 갖추고 있는 방어 장치를 무력화하는 전략도 더했다. 췌장암 세포가 면역 공격을 피하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세포주기 조절 단백질 PKMYT1을 억제하자, 암세포가 NK 세포 공격에 더 취약해지는 현상이 관찰됐다. PKMYT1 감소 조건에서 NK 세포와 암세포 간의 물리적 결합과 면역 인식 신호가 모두 강화돼, 전체적인 항암 효율이 상승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drNK 자체의 살상 능력 강화, CAR를 통한 정밀 표적화, 암 방어 단백질 억제에 따른 취약성 증폭이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가 마련된 셈이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기존 NK 세포 치료제와 차별화된 세 가지 축을 통합한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한다. 첫째로 체세포를 줄기세포 단계로 되돌리지 않고 직접 NK 세포로 전환함으로써, 생산 공정에서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높일 수 있는 여지를 확보했다. 둘째로 종양 특이 항원을 겨냥하는 CAR 기술을 drNK에 접목해 고형암에서도 표적성이 강화된 면역세포를 설계했다. 셋째로 종양 미세환경 내부의 면역회피 메커니즘을 분자 수준에서 직접 겨냥함으로써, 종양 자체를 면역치료에 더 취약한 상태로 만드는 병합 전략을 입증했다.

 

국제적으로 NK 세포 기반 면역치료제는 CAR T 세포의 한계를 보완할 차세대 플랫폼으로 부상해 왔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제대혈 유래 NK, iPSC 유래 NK, 유전자 편집 NK 등 다양한 소스 기반의 후보들이 개발 중이며, 일부는 임상 단계에 진입해 있다. 다만 iPSC 기반 접근은 제조비용과 종양형성 위험 관리, 기저 유전적 변이 축적 등 복잡한 이슈를 안고 있고, 제대혈·공여자 유래 NK의 경우 균일한 품질과 대량생산 체계 구축이 주요 과제로 남아 있다. 체세포 직접 전환 방식은 기존 원료 의존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특정 환자나 질환에 맞춘 맞춤형 생산 시나리오를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국내에서는 면역세포 치료제 규제 환경이 비교적 엄격한 편으로, 세포원과 제조 공정에 대한 안전성과 일관성 검증이 필수다. 직접 리프로그래밍 과정에서 사용되는 유전자 전달 도구와 편집 기술에 대한 장기 안전성 입증, 종양화 가능성에 대한 정밀 평가, 제조 배치 간 변동성 최소화 등이 향후 전임상·임상 단계에서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더불어 CAR를 결합한 고기능 NK는 과도한 사이토카인 분비나 비표적 조직 손상에 대한 우려도 있어, 용량 조절과 안전 스위치 도입 등 추가 설계가 요구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다양한 고형암과 난치성 질환으로의 확장 가능성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메소텔린 외에도 난소암, 폐암, 위암 등에서 발현되는 종양 특이 항원을 표적으로 삼을 경우 병용 전략을 설계할 수 있어, 플랫폼 기반 기술로서의 사업성이 커질 여지도 있다. 해외 기업들이 유사한 직접 전환 혹은 재프로그래밍 기반 NK 기술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이번 성과는 국내 연구진이 원천 설계 단계에서 경쟁에 본격 합류했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이번 연구 결과는 혈액암과 면역세포 치료 분야를 다루는 국제학술지 Journal of Hematology and Oncology에 지난달 13일자로 게재됐다. 조이숙 박사는 이번 성과가 치료용 NK 세포의 공급 기반을 넓히는 동시에 복잡한 질환에 대해 다중 요소를 결합한 맞춤형 치료 전략을 제시한 사례라고 설명하면서, 향후 안전성과 효율성을 더욱 높이는 후속 연구를 통해 실제 임상 적용 가능성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직접 전환 NK 플랫폼이 규제와 제조 장벽을 넘어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문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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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명공학연구원#조이숙#dr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