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베네수엘라 유조선 전면 봉쇄 명령”…트럼프 제재 강화에 국제 유가 5년 만의 최저서 반등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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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16일, 런던(UK)과 뉴욕(USA) 원유 선물시장에서 국제 유가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기대 확산 속에 5년 만의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USA) 대통령의 베네수엘라 유조선 전면 봉쇄 발표 이후 1%대 반등세로 돌아섰다. 이번 움직임은 러시아와 베네수엘라를 겨냥한 제재 정책이 공급 과잉 국면의 유가에 어떻게 상반된 방향의 압력을 가하는지 보여주며, 향후 제재 수위와 전쟁 종식 논의에 대한 시장의 민감도를 드러냈다.

 

현지시각으로 16일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1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2.7% 하락한 배럴당 58.92달러에 마감했다. 같은 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도 2.7% 떨어진 배럴당 55.27달러로 장을 마쳤다. 두 지표 유 모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수요가 급감했던 2021년 2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내려가면서, 최근 원유 시장의 뚜렷한 약세를 재확인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국제 유가, 5년 만의 최저 후 1%대 반등…트럼프 베네수엘라 유조선 봉쇄 영향
국제 유가, 5년 만의 최저 후 1%대 반등…트럼프 베네수엘라 유조선 봉쇄 영향

시장 참여자들은 최근 유가 하락의 배경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발언을 첫손에 꼽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백악관(White House)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합의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고 말하며 종전 가능성을 거론했다. 이 발언 이후 금융시장에서 전쟁이 비교적 조기에 끝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졌고, 그 결과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가 완화되거나 해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빠르게 확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료되고 제재가 완화될 경우, 이미 공급 과잉 상태로 평가되는 세계 원유 시장에 러시아산 원유가 추가로 유입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힘을 얻었다. 유럽 측 당국자들은 영토 문제 등 핵심 쟁점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강조하며 성급한 낙관론에 선을 긋고 있다. 이들은 합의에 도달하기까지 상당한 장애 요인이 남아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종전 기대만으로 제재 완화를 전제하는 시장의 반응을 경계하는 태도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에너지 애스펙츠(Energy Aspects)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향한 신속한 평화 합의가 연말·연초처럼 거래량이 얇은 시기에 원유 시장을 크게 흔들 수 있는 가장 큰 지정학적 변수라고 평가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FT는 러시아의 원유 수출 규모와 글로벌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제재 완화 논의만으로도 가격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노르웨이 에너지 분석업체 리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의 지정학 분석 책임자 호르헤 레온은 종전 합의 성사 시 미국의 대러 제재는 비교적 빠른 속도로 풀릴 수 있으나, 유럽연합(EU)의 제재는 정치적 부담을 고려해 단계적 완화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또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석유 인프라에 대한 공격이 중단될 공산이 크다며, 이런 변화가 러시아산 원유 공급을 실질적으로 늘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레온은 특히 해상에서 대기 중인 러시아산 원유 물량을 지목하며 “이렇게 되면 약 1억7천만 배럴로 추정되는 해상에 있는 러시아산 원유의 상당한 물량이 시장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수출 재개뿐 아니라, 이미 물류망에 쌓여 있는 물량이 한꺼번에 시장에 풀릴 경우 가격 하락 압력이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를 시사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국제 유가는 다음 날 들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또 다른 대외 제재 강화 메시지에 즉각 반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를 오가는 제재 대상 유조선을 전면 봉쇄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번에는 공급 차질 우려가 부각돼 유가가 반등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서로 다른 제재 카드가 러시아와 베네수엘라라는 두 산유국에 상반된 방식으로 작용하며, 글로벌 유가의 단기 방향성을 뒤흔든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베네수엘라 정권을 외국 테러 단체(FTO)로 지정한다고 예고하고, “베네수엘라로 들어가거나 베네수엘라에서 나오는 모든 제재 대상 유조선에 대해 전면적이고 완전한 봉쇄를 명령한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 경제가 석유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은 구조인 만큼, 이 조치는 사실상 베네수엘라의 대외 원유 수출 통로를 강하게 조이는 신호로 해석됐다.

 

시장에서는 베네수엘라산 원유의 절대 규모가 러시아나 사우디아라비아(Saudi Arabia)에 비해 크지 않더라도, 중남미 지역 일부 정제설비와 특정 품질의 원유를 필요로 하는 정유사들에는 적잖은 공급 혼선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베네수엘라산 원유 봉쇄가 중장기적으로는 다른 산유국의 공급 확대나 재배치를 촉진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공급 불확실성을 키우며 가격을 떠받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한국시간 17일 오후 3시 40분 기준 브렌트유 1월물 선물 가격은 배럴당 59.81달러로, 전날 종가인 58.92달러 대비 약 1.5% 상승했다. 같은 시각 WTI 1월물 선물 가격도 배럴당 56.13달러로, 전날 종가 55.27달러보다 약 1.6% 오른 수준을 기록했다. 하루 전까지 2021년 2월 이후 최저치를 찍었던 유가가 트럼프 대통령의 베네수엘라 제재 강화 발언 한마디에 반등세로 전환된 셈이다.

 

더 넓게 보면 국제 유가는 최근 몇 달 동안 공급 요인이 주도하는 하락 압력에 시달려 왔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은 하루 300만 배럴 증가했다. 증산의 배경으로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Canada), 브라질(Brazil), 아르헨티나(Argentina) 등 비OPEC 산유국의 생산 확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셰일오일 중심의 미국 생산 증가가 비OPEC 공급 확대를 이끌며 OPEC의 감산 노력을 상쇄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IEA는 내년에도 공급 과잉이 오히려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IEA는 내년에 하루 평균 370만 배럴 규모의 공급 과잉이 발생할 것이라고 추산하면서, 이 수치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웃도는 사상 최대 규모라고 평가했다. 수요 증가세가 둔화되는 가운데 감산 공조가 느슨해질 경우, 구조적인 초과공급이 유가의 상단을 제한할 수 있다는 관측이 시장에서 힘을 얻고 있다.

 

이 같은 공급 구조 속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가능성과 러시아산 원유 유입 확대 전망은 유가를 끌어내리는 방향으로 작용해 왔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베네수엘라 유조선 봉쇄 명령은 중남미 산유국 공급 차질 우려를 자극하며 단기적으로 유가를 지지하는 변수로 부상했다. 러시아와 베네수엘라를 둘러싼 상반된 제재 시나리오가 가격에 서로 다른 신호를 보내는 복합적인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국제 금융·원자재 시장에서는 러시아와 베네수엘라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의 제재 정책 변화, 우크라이나 전황과 평화 협상 진전 여부, 그리고 OPEC과 비OPEC 산유국의 향후 감산·증산 결정이 국제 유가 향방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거론된다. 글로벌 경기 둔화, 중국(China) 수요 회복 속도, 기후·에너지 전환 정책 역시 중장기 수요를 규정할 요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정학 변수와 구조적인 공급 과잉이 맞물린 현 상황에서 유가 변동성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제재 완화와 베네수엘라 제재 강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지역별·품질별 원유 가격이 차별화되며 시장이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제사회는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 정책과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논의의 실제 이행 여부가 앞으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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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트럼프#국제유가#베네수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