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궤도 위성도 수명관리”…천리안1호 폐기 수순, 우주환경 보호 신호탄
정지궤도 위성 수명 관리와 책임 있는 폐기가 우주개발 경쟁의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정지궤도 복합 인공위성인 천리안위성1호가 설계 수명보다 두 배 이상 긴 16년 임무를 마치고 내년부터 단계적 폐기에 들어가면서, 국내 우주 인프라 세대교체와 함께 우주쓰레기 저감 규범 준수가 본격화하는 흐름으로 읽힌다. 업계와 연구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정지궤도 자원 관리와 우주환경 보호를 중시하는 글로벌 기준에 발맞춘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주항공청은 9일 제2회 천리안위성운영위원회를 열어 천리안위성1호의 임무 종료와 폐기 안건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총 7차에 걸친 임무 연장을 거친 천리안1호는 마지막 연장이 끝나는 2025년 4월부터 공식적으로 폐기 단계에 돌입한다. 실제 정지궤도 보호구역 이탈 기동은 2026년 7월경으로 계획돼 있으며, 그 시점에 모든 운영이 완전히 종료될 예정이다.

천리안위성1호는 2010년 6월 발사된 국내 첫 정지궤도 복합 위성이다. 고도 약 3만5786킬로미터 정지궤도에서 기상 관측, 해양 관측, 시험용 통신중계 등 다목적 임무를 수행하도록 설계됐으며, 설계 수명은 7년이었다. 실제 운용에서는 탑재체와 플랫폼 성능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설계 수명을 두 배 이상 초과해 약 16년 동안 운영됐고, 그 기간 국내 우주기상·해양 관측 체계의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술적으로 천리안위성1호는 정지궤도에서 한반도와 주변 해역을 상시 주시하는 광학·적외선 기상탑재체, 해색 및 적조를 관측하는 해양탑재체, 시험용 통신탑재체를 동시에 탑재한 복합 플랫폼이라는 점이 특징이었다. 정지궤도 위성은 지구 자전과 동일한 속도로 공전해 지상에서 볼 때 항상 같은 위치에 머무는 구조로, 실시간 감시와 통신 서비스에 유리하다. 천리안1호는 이 특성을 활용해 태풍 이동 경로, 집중호우 발생 징후, 서해와 남해의 해수 온도 변화, 적조 발생 등을 연속적으로 관측하며 국가 재난 대응 체계의 정밀도를 높였다.
통신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시험무대를 제공했다. 천리안1호는 광대역 통신과 위성 방송 시험 서비스를 정지궤도에서 구현해, 국내 위성통신 기술의 검증과 상업화 전 단계 실험에 활용됐다. 이를 통해 위성 기반 공공통신 서비스, 재난 상황에서의 백업 통신망 설계 등 통신 인프라 확장 시나리오를 실제 궤도 환경에서 검증할 수 있었다. 우주항공청은 현재 개발 중인 천리안위성3호가 이러한 통신 임무를 본격적으로 이어받아 공공통신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기상·해양 임무는 이미 차세대 위성으로 이관됐다. 기상 관측은 천리안위성2A호가, 해양 관측은 천리안위성2B호가 맡아 더 높은 공간 해상도와 관측 주기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위성 센서의 분광 대역과 감도, 영상 처리 알고리즘 등이 개선되면서 태풍과 국지성 호우 예측 능력이 강화됐고, 해양 환경 모니터링 역시 적조, 녹조, 미세 플라스틱 추정 등으로 고도화되는 추세다. 천리안1호의 퇴역은 이러한 세대교체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번 폐기 절차의 또 다른 축은 우주쓰레기 경감이다. 정지궤도는 기상·통신·방송 위성이 밀집한 핵심 자원 구간인 만큼, 고장 위성이나 연료가 소진된 위성이 방치될 경우 충돌과 파편 확산 위험이 커진다. 우주항공청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천리안1호 폐기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우주비행체 개발 및 운용 권고에 맞춰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권고는 운영 종료 이후 위성을 정지궤도 보호구역 바깥의 일명 묘지궤도로 이동시키도록 권장해, 향후 운용될 위성과의 충돌 가능성을 줄이는 내용을 포함한다.
정지궤도 보호구역은 통상 지구 표면으로부터 약 3만5786킬로미터를 중심으로 상하 200킬로미터 범위로 설정된다. 천리안1호는 설계된 기동 시점에 잔여 연료를 사용해 이 구역을 벗어나 상단 묘지궤도로 이동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잔류 에너지원 제거, 탑재체 전원 차단 등 추가적인 위험 저감 조치도 병행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절차가 향후 국내 정지궤도 위성 설계 단계부터 수명 종료 이후 폐기 시나리오를 함께 고려하도록 만드는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윤영빈 우주항공청 청장은 천리안위성1호가 대한민국 우주기술 자립과 위성정보 활용 기반을 다진 상징적 위성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성공적인 임무 완수와 더불어, 국제 규범에 따른 책임 있는 폐기 결정이 우주환경 보호와 우주활동의 장기적 지속가능성 확보에 기여하는 조치라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성과를 넘어, 국내 우주개발 정책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국내 우주 산업계에서는 천리안1호 퇴역이 위성 개발 역량의 성숙과 함께 운용·폐기까지 아우르는 전주기 관리 체계 정착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본다. 차세대 천리안 위성군과 향후 정지궤도 위성 프로젝트에서도 수명 설계, 연료 마진, 폐기 궤도 확보 전략이 초기 설계 단계부터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주항공청과 항우연은 천리안1호가 계획된 시점에 안전하게 묘지궤도로 이동할 수 있도록 남은 기간 운용 상태를 정밀 관리할 방침이다. 산업계는 이번 사례가 향후 정지궤도 자원 확보 경쟁 속에서 우리나라가 기술과 책임성을 동시에 갖춘 우주 파트너로 인정받는 시험대가 될지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