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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원 비화폰 원격 삭제”…내란특검, 박종준 기소해 증거 인멸 정면 겨냥

박다해 기자
입력

12·3 비상계엄 의혹을 둘러싼 내란 수사가 증거 인멸 공방으로 번졌다.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이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의 비화폰 정보를 원격으로 삭제한 혐의로 박종준 전 대통령실 경호처장을 재판에 넘기면서다.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은 10일 박종준 전 대통령실 경호처장을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관련 형사사건의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수사를 총괄하는 박지영 특별검사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전날 박 전 처장에 대해 윤석열 전 대통령 등의 내란 형사사건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공소를 제기했다"고 전했다.

특검에 따르면 박 전 처장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의 비화폰에 저장된 정보를 원격 로그아웃 방식으로 삭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문제의 통화는 지난해 12월 6일 오후 4시 43분께 이뤄졌다. 박 전 처장이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홍 전 차장의 비화폰 관련 대화를 나눈 시점이다.

 

당시 박 전 처장은 국회를 통해 홍 전 차장의 비화폰 화면 일부가 노출된 상황을 문제 삼았다. 그는 조 전 원장에게 "홍장원이 해임됐다는 말도 있던데 비화폰 회수가 가능하냐"고 물으며, 기기 회수 여부를 집중적으로 따져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시점에 홍 전 차장은 이미 조 전 원장의 요구를 받고 국가정보원에 사직서를 제출한 상태였다. 통상 절차에 따르면 면직 처리가 완료되면 홍 전 차장의 비화폰은 국가정보원 보안 담당 부서에 반납돼야 했다. 이 경우 기기에 저장된 통화기록과 전자 정보는 보안 관리 하에 보존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특검에 따르면 조 전 원장은 이런 사정을 알고서도 박 전 처장에게 "홍장원이 소재 파악이 안 되고 연락 두절이라 비화폰을 회수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 내부 절차상 회수가 예정된 기기임에도, 사실상 회수 불가 상황인 것처럼 설명했다는 취지다.

 

이 통화에서 박 전 처장은 비화폰 관리 문제를 보안 사고로 전환시켰다. 그는 "보안 사고에 해당하니 홍장원 비화폰은 로그아웃 조치하겠다. 통화 기록이 노출되지 않도록 비화폰을 삭제해야 한다"고 말했고, 조 전 원장은 "그렇게 조치하면 되겠다"고 답했다.

 

이 대화 이후 홍 전 차장의 비화폰에는 원격 로그아웃 조치가 내려졌다. 특검은 이 조치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통화 기록을 포함한 각종 전자 정보들이 삭제된 것으로 파악했다. 통상의 절차대로 비화폰이 회수됐다면 보존됐을 전자 정보들이, 사전에 원격 조작을 통해 삭제됐다는 설명이다.

 

특검팀은 박 전 처장의 행위가 단순한 보안 조치가 아니라 내란 관련 증거를 없애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내란 형사사건 증거 인멸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특검 관계자는 박 전 처장이 내란 수사와 관련한 통화기록 노출을 의식해 의도적으로 로그아웃을 지시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했다.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도 앞서 같은 혐의로 기소됐다. 특검은 박 전 처장과 조 전 원장 간 통화 내용과 이후 조치 과정을 근거로 두 사람 모두에게 공모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내란 의혹 수사가 지휘 라인뿐 아니라 증거 관리 책임자들까지 겨냥하며 확대되는 모습이다.

 

박 전 처장은 내란 관련 수사와 별개로 다른 형사 재판도 받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공수처 수사팀의 집행 활동을 조직적으로 막았다는 판단 아래 특수공무집행 방해 등 혐의가 적용됐다.

 

정치권에선 내란특검이 비상계엄 의혹의 실체뿐 아니라 증거 보존과 관리 책임까지 추적하는 수사 방향을 보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 비화폰 삭제의 경위와 공모 여부가 어떻게 규명되느냐에 따라 내란 의혹 전반의 진상 규명 폭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내란 특별검사팀은 박 전 처장과 조 전 원장 관련 재판 진행 상황을 지켜보며 비상계엄 의혹의 전모를 밝히기 위한 추가 수사도 병행할 계획이다. 정치권과 법조계는 관련 공판 과정에서 드러날 증언과 자료를 통해 내란 수사의 향배를 가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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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준#조태용#윤석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