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계엄은 의회 폭거 맞서기 위한 것"…장동혁 사과 선긋기 속 국민의힘 내 균열 심화

최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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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을 둘러싼 책임 공방과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두고 국민의힘 내부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계엄 선포 1년인 3일을 전후해 당 지도부와 초·재선 의원, 침묵을 택한 다수 의원 사이에서 노선 차이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진로 논쟁이 가속하는 분위기다.

 

이날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107명 가운데 약 40명이 12·3 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에 동참했다. 그러나 장동혁 대표는 당 대표로서 책임을 언급하면서도 계엄의 성격을 의회 폭거에 맞선 조치로 규정해 다른 메시지를 냈다. 여기에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의원들이 등장하면서 당의 향후 노선을 둘러싼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우선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계엄의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의힘 소속 의원 전원을 대표해 사과한다고 했지만, 회견장에는 유상범 원내운영수석부대표, 김은혜 원내정책수석부대표 등 원내대표단만 배석했다. 계엄 사태의 정치적 책임을 분명히 하면서도, 당 전체의 이견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소장파와 친한동훈계로 분류되는 초·재선 의원 25명은 별도의 기자회견을 열고 당 차원의 입장과는 또 다른 수위를 제시했다. 이들은 대국민 사과문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롯한 비상계엄을 주도한 세력과 정치적으로 단절할 것"이라고 밝히며 계엄 책임론을 윤 전 대통령과 핵심 세력에 정면으로 겨냥했다. 당 안팎에선 계엄을 계기로 사실상 윤 전 대통령과 당의 노선을 갈라세우려는 시도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른바 공부 모임 대안과 책임이 입장문 초안을 마련한 뒤 참여 의사를 밝힌 의원들을 취합한 것으로 전해진 이 반성문에는 안철수 의원을 비롯한 중진급도 이름을 올렸다. 4선 안철수 의원, 3선 김성원·송석준·신성범 의원과 함께 재선 권영진·김형동·박정하·배준영·서범수·엄태영·이성권·조은희·최형두 의원이 참여했다. 초선 고동진·김용태·김재섭·박정훈·우재준·이상휘·정연욱 의원과 비례대표 초선 김건·김소희·유용원·안상훈·진종오 의원도 동참했다. 계파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소속 의원들이 반성문에 이름을 올리면서, 계엄 사태에 대한 내부 비판이 특정 계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

 

개별 소셜미디어를 통한 사과 행렬도 이어졌다. 윤석열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5선 권영세 의원은 페이스북에 "야당의 입법 독재와 폭주가 아무리 심각했다 해도 계엄 선포는 결코 해서는 안 될 잘못된 선택이었다"며 "깊이 반성한다"고 적었다. 윤석열 정부 핵심 인사 출신 중진이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한 셈이다.

 

경북 지역 재선 박형수 의원 역시 페이스북에서 "아무리 민주당이 비상식적 입법독주를 자행하고 있었다 해도,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국민께 불안과 혼란을 드리는 위헌적 방식으로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된 건 잘못"이라며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서울 지역 재선 배현진 의원과 초선 한지아 의원도 각자 사과문을 게시했다. 민주당 출신으로 당적을 옮긴 조경태 의원은 광주를 직접 찾아가 윤 전 대통령 단죄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내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계엄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한동훈 전 대표도 같은 날 국회 담벼락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계엄 해제 표결을 위해 담벼락을 넘었던 장소를 다시 찾은 자리에서 "당시 여당 대표로서 계엄을 예방하지 못한 점에 대해 다시 한번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한 뒤 고개를 숙였다. 한 전 대표는 계엄 사태의 상징적 장면이 연출된 곳을 의도적으로 선택해 책임을 재차 강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장동혁 대표의 태도는 다른 방향을 향했다. 그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국민의힘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적으면서도, "12·3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라고 규정했다. 계엄을 낳은 정치적 배경으로 야당의 입법 행태를 지목하며 정당성을 일정 부분 인정하는 듯한 해석을 낳는 발언이었다. 이 발언에 대해 당 안에서는 "부적절한 메시지"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반면 원외 지도부인 김민수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적으며 장 대표의 인식을 지지했다.

 

친한동훈계로 꼽히는 박정훈 의원은 송 원내대표의 사과를 두둔하며 장 대표를 직접 겨냥했다. 그는 페이스북 글에서 "당 대표가 사과를 거부한 상황에서 송 원내대표의 사과는 상징성이 크다"고 평가한 뒤 "장동혁 지도부가 지금 당원 다수의 마음을 대표하고 있는 게 맞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는 당 대표의 리더십과 대표성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당 지도부와 일부 의원들의 공개 사과, 윤 전 대통령과의 결별 선언에도 60명이 넘는 나머지 의원들은 별도의 메시지를 내지 않으며 관망하는 태도를 취했다. 계엄에 대한 평가와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을 두고 당내 의견이 삼분화된 양상이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한쪽은 윤 전 대통령과의 결별을 선언하며 계엄을 정면 비판했고, 다른 쪽은 계엄의 정당성을 일정 부분 옹호했다. 또 다른 다수는 정치적 상황과 여론의 향배를 지켜보며 침묵을 택한 구도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여부가 국민의힘의 선거 전략과 정체성을 가르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계엄을 둘러싼 책임론이 여전히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수도권과 충청권 등 이른바 중원에서의 승부를 위해 중도층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현실적 압박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계엄 사태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경우, 당내 침묵했던 의원들의 입장 변화도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당의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계속해서 여론이 좋지 않으면 의원들이 가만히 있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장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계엄과 윤 전 대통령을 둘러싼 평가가 향후 공천과 당내 권력구도와도 맞물릴 수 있다며, "당내 원심력이 더 커질 수 있는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국민의힘은 계엄 사태 1년을 계기로 다시 드러난 내부 균열을 수습하는 동시에,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 집토끼 결집과 산토끼 확장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국회는 향후 관련 상임위와 본회의 논의를 통해 계엄 사태의 경과와 책임 소재를 둘러싼 공방을 이어갈 전망이며, 정치권은 계엄을 둘러싼 평가와 사과 수위를 두고 계속해서 정면 충돌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최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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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국민의힘#윤석열전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