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성장펀드 지키고 AI 예산 손질”…여야, 2026년 예산안 절충 타협
예산을 둘러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충돌 지점은 치열했지만, 물러설 수 없는 간판 사업을 지키려는 여당과 재정 건전성을 내세운 야당이 맞붙은 끝에 절충안에 이르렀다. 2일 밤 국회 본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이 가까스로 처리되면서 이재명 정부 핵심 국정과제를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는 한 고비를 넘겼다.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026년도 예산안 수정안에 따르면 내년도 총지출 예산 규모는 727조9천억원으로 확정됐다. 국회 심사 과정에서 정부안 약 728조원 가운데 9조2천249억여원이 증액되고 9조3천517억여원이 감액돼, 최종적으로 1천268억여원이 순감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정부의 대표 국정과제로 꼽히는 국민성장펀드와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 예산을 사실상 원안대로 지켜낸 것을 최대 성과로 내세웠다. 국민의힘이 대규모 감액을 요구했던 항목들이었지만, 막판 협상 과정에서 방어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논의 결과를 설명하며 "새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추진을 위해 국민성장펀드 및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 등은 감액하지 않는 대신 AI 지원 예산 및 정책펀드 등을 일부 감액했다"고 전했다. 그는 핵심 과제를 그대로 살리되, 야당이 문제를 제기해 온 예산에서 조정을 수용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AI 관련 예산은 정부안에서 2천64억원 줄었다. 비율로는 원안 대비 약 2.0% 수준이다. 여당 입장에서는 AI 투자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야당의 지적을 반영해 상징적 수준의 조정을 수용한 셈이다. 동시에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재해복구시스템 구축 예산은 3천934억원, AI 모빌리티 실증사업 예산은 618억원으로 증액 반영됐다. 디지털 인프라와 미래 모빌리티 분야 투자는 보완했다는 판단이다.
반면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 핵심 국정과제 가운데 AI 지원, 각종 정책펀드, 예비비 등에서 총 4조3천억원 규모를 감액한 점을 대표 성과로 내세웠다. 재정 여건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무리한 펀드 조성에 제동을 걸었다는 주장이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국민의힘 간사를 맡은 박형수 의원은 "국민성장펀드 등 대규모 펀드 출자 등을 고려해 중소기업 모태 조합 출자사업을 2천800억원 감액하고 미래환경투자 등을 60억원 감액했다"고 설명했다. AI 지원 예산의 경우 당초 1조2천억원 가운데 2천64억원, 약 17.2%를 줄였다고 부연했다.
정부 예비비 역시 손질됐다. 정부안 4조2천억원에서 2천억원이 줄면서, 여야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비한 여유 재원과 재정 규율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았다.
집행의 투명성과 관련한 논란이 지속돼 온 특수활동비 문제도 다시 테이블에 올랐다. 지난해 윤석열 정권 시절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경찰청 특수활동비를 전액 삭감한 뒤 올해 복원되는 과정에서 편성 규모가 쟁점이 됐다. 박형수 의원은 "특활비 삭감 의미를 대통령실 운영비 국정운영관리비 1억원 삭감에 담기로 했다"고 밝혔다. 액수 자체는 크지 않지만, 대통령실 예산에도 손을 댔다는데 정치적 메시지를 실었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국민의힘이 협상 과정에서 중점적으로 요구해 온 서민·보훈·교육 관련 예산은 다수 반영됐다. 도시가스 공급 배관 설치 지원 예산 1천400억원, 국가장학금 지원 예산 706억원, 보훈유공자 참전명예수당 184억4천만원 등의 증액이 대표적이다. 고령 보훈 유공자의 생활 안정과 학비 부담 경감을 위해 예산을 보강해야 한다는 야당 주장에 여당도 상당 부분 동의한 셈이다.
국방 분야에서도 일부 변화가 생겼다. 휴일 군 당직비 인상 등 군 간부 처우 개선 예산이 290억원 증액됐다. 최근 군 인력 확보와 사기 진작 문제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는 가운데, 열악한 근무 여건 개선 요구를 부분적으로 반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복지 영역에서는 조정이 이뤄졌다. 기초연금 지급 예산의 경우 이전용·불용 규모를 감안해 2천249억원이 줄었다. 정부와 국회는 실제 집행 실적을 반영해 과다 편성 구간을 정리했다는 입장이다.
대외경제 분야에서는 한미 통상·투자 협력 구조 개편이 예산에 반영됐다. 내년도 예산안에는 한미 관세협상 이행을 위해 기존 대미통상프로그램 감액분 1조9천억원 중 1조1천억원을 앞으로 신설될 한미전략투자공사 출자 예산으로 돌려놓는 내용이 포함됐다. 향후 한미 간 전략 산업 투자 협력을 위한 재정 인프라를 마련하는 조치로 해석된다.
이처럼 내년도 예산안은 이재명 정부의 간판 사업을 지키려는 더불어민주당과 AI·정책펀드 감액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앞세운 국민의힘이 각자 핵심 요구를 일부 관철하며 타협한 결과로 정리된다. 국회는 예산안 후속 법안 처리와 세부 사업 집행 점검을 이어갈 계획이며, 정치권은 예산 심사 과정에서 드러난 정책 기조 차이를 두고 내년 정국에서 다시 격돌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