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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가인하 역풍온다”…정부 개편안, K바이오 도약 발목 우려

강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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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릭 약가 인하가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성장 궤적을 바꾸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내년부터 복제약 가격을 단계적으로 40퍼센트대까지 낮추는 약가제도 개편을 예고한 가운데, 업계는 2012년 대규모 약가 인하 이후 한국 제약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실제로 후퇴한 전례를 들어 경고 메시지를 내고 있다. 가격 인하로 단기 재정 절감 효과는 얻을 수 있지만, 신약 연구개발과 설비 투자를 떠받쳐온 현금 흐름이 줄면 K바이오의 도약 구상이 근본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제약바이오업계와 통계에 따르면 2011년 한국 제약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1점7퍼센트로 11위였으나,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이후 하락세가 이어져 2017년 1점6퍼센트로 13위, 2024년에는 1점3퍼센트로 13위에 머무르고 있다. 2012년 단행된 일괄 약가 인하는 총 6506개 품목, 전체의 47점1퍼센트에 해당하는 의약품 가격을 평균 14퍼센트 낮춘 조치였다. 이후에도 반복적인 약가 인하가 이어졌는데, 업계는 내년 시행 예정인 제네릭 중심 약가 인하의 매출 충격이 2012년 조치보다 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개편안의 골자는 제네릭 신제품 가격과 기존 등재 의약품 가격을 모두 오리지널 의약품의 40퍼센트대 수준으로 맞추는 것이다. 현재 제네릭 약가는 오리지널의 53점55퍼센트 수준인데, 정부는 신규 제네릭과 기등재 인하 대상 품목을 3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40퍼센트대까지 내릴 계획이다. 공급 안정성이 특히 중요한 필수 의약품은 예외로 둔다. 업계는 약가를 40퍼센트 수준으로 낮출 경우 연간 최대 3조6000억원의 매출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고 추계했다. 1999년부터 2023년까지 24년간 누적 약가 인하 규모는 이미 63조원에 달한다.

 

국내 상장 제약사 169개사의 평균 연구개발 투자 비중은 매출의 12퍼센트 수준이고, 정부가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지정한 49개사의 연구개발 비중은 13점4퍼센트에 이른다. 개발 중인 국산 신약 파이프라인은 3233개로 세계 3위 규모로 집계된다. 올해 기술 수출 계약 규모는 약 20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의약품 설비 투자액도 2023년 1조9327억원에서 2024년 2조6923억원으로 39퍼센트 증가했다. 업계는 이 같은 공격적 연구개발과 설비 확충의 재원이 상당 부분 약가 기반 내수 수익에서 나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약가 인하와 연구개발 투자의 연쇄 효과를 거론하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약가 인하로 산업 전반의 수익성이 훼손되면 연구개발과 생산설비 투자를 늘릴 동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약 후보 물질 발굴과 파이프라인 확장, 글로벌 기술 수출로 이어져 온 성장 경로가 단기간에 꺾일 수 있으며, 제약산업은 한번 기반이 무너지면 장기간 회복이 어렵다는 산업 특성상 리스크가 크다고 강조했다. 또 현재가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세계 5대 강국을 향해 도약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는 점에서, 강도 높은 약가 인하는 정부가 내세운 산업정책 목표와도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이번 개편이 글로벌 헬스케어 경쟁 구도에서도 불리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은 고가 혁신신약에 대한 약가 압박을 강화하면서도, 자국 내 바이오텍 생태계와 생산 기반 유지에 필요한 인센티브를 병행하는 구조를 택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1999년 실거래가 제도 도입 이후 10여 차례에 걸친 약가 인하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줄여 왔지만, 정책 누적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정밀한 총괄 평가 없이 추가 인하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이 제기된다. 업계는 자칫 제네릭 중심 생산과 위탁생산, 기술수출을 모두 아우르는 산업 생태계 전반의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책과 제도 측면의 비판도 구체화되고 있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은 최근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1999년 이후 반복된 약가 인하 조치에 대해 효과와 부작용, 산업·의료 현장에 미친 영향에 대한 종합 평가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노 회장은 기존 정책과 이번 개편안이 국민 건강과 산업 경쟁력에 미칠 영향을 정부와 산업계가 함께 분석하고, 그 결과에 기반한 개선안을 도출해야 한다며, 제도 시행을 일정 기간 유예하는 방안도 검토해달라고 요구했다.

 

개편안의 설계가 혁신형 제약사 중심으로 혜택을 집중시키고 있어, 비혁신형 제약사와 제네릭 중심 기업을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는 제네릭에 일정 기간 부여해 온 약가 가산을 폐지하는 대신, 혁신형 제약기업이면서 연구개발 투자 비율 상위 30퍼센트에 속하는 회사에는 오리지널의 68퍼센트, 하위 70퍼센트에는 60퍼센트 수준의 가산을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국내 매출 500억원 미만이지만 최근 3년간 최소 1건 이상의 신약 임상 2상 승인 실적이 있는 중소기업에는 55퍼센트 가산을 인정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보건복지부 인증 혁신형 제약기업 49곳에 속하지 않는 다수의 일반 제약사는 상대적으로 큰 약가 인하 압력을 받게 되는 구조다.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매출과 사업모델이 다양한 기업들을 한 가지 잣대로 구분해 비혁신형 기업을 도태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된 정책은 산업 생태계의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기업 규모상 신약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기 어려운 제네릭 중심 회사들도 국민에게 상대적으로 저렴한 의약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생존 가능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체계의 한계도 도마에 올랐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혁신형 제약기업 명단에는 매출 규모는 작지만 연구개발 비율이 높은 바이오 벤처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 약가 인하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대형·중견 일반 제약사의 비중은 오히려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혁신형 지정을 목표로 연구개발 비중을 끌어올려 온 기업들, 신약은 아니지만 개량신약과 제제 기술에 강점을 가진 회사, 생산 시설과 품질 시스템에 선제적으로 투자한 제조기업 등은 정작 약가 인하로 인한 매출 감소를 그대로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 리베이트 이슈 등으로 인증에서 탈락하거나 재인증을 받지 못한 기업들은 이번 개편에서도 불리한 출발선에 서게 된다.

 

정부가 정책 취지로 내세운 것처럼 연구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기업을 우대하려면, 인증제도 밖에 있는 회사에도 문호를 넓힐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들은 약가 인하가 기업들에게 구조조정과 사업 축소를 강제할 수 있는 고강도 정책인 만큼, 혜택 대상을 좁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연구개발 투자뿐 아니라 생산시설 투자, 품질 시스템 고도화처럼 장기 경쟁력과 직결되는 항목을 통합적으로 평가해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국가적 차원에서 생산기지 역할을 수행하는 중견 제네릭 기업과 위탁생산 기업을 제도 설계에서 배제할 경우, 수급 안정성과 글로벌 공급망 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따른다.

 

전문가들은 단기 재정 절감과 장기 산업 경쟁력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공지능 기반 신약개발,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유전체 분석 등 첨단 기술이 결합된 K바이오 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우려면, 국내 시장에서 발생하는 안정적인 수익이 최소한의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약가 인하의 강도와 속도를 조정하고, 혁신형 인증 제도와 연계된 인센티브 체계를 재설계하는 방향에서 정부와 산업계의 조율이 필요하다고 본다. 산업계는 새 약가제도가 실제 시장에 연착륙할 수 있을지, 그리고 약가와 혁신 사이의 균형을 맞출 제도 보완이 뒤따를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강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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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릭약가인하#한국제약바이오협회#혁신형제약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