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불출석은 국민 우롱"…쿠팡 청문회, 외국인 증인 놓고 여야 동시 질타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둘러싸고 국회와 쿠팡이 정면 충돌했다. 핵심 당사자인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청문회에 나타나지 않은 가운데, 외국인 증인들의 어눌한 답변이 논란을 키웠다. 여야는 한목소리로 책임 회피를 비판하며 공세 수위를 끌어올렸다.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국회에서 쿠팡 개인정보 유출 관련 청문회를 열고 쿠팡 경영진을 상대로 사고 경위와 책임 소재를 따져 물었다. 그러나 김범석 의장과 박대준·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 핵심 증인이 모두 불출석하면서 회의 시작부터 긴장이 고조됐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개회 직후 "국회를 넘어 대한민국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최 위원장은 또 "법과 절차에 따라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며 "사고 경과와 책임 소재를 끝까지 규명하겠다"고 강조했다.
여야 의원들은 김범석 의장의 불출석을 두고 공동 보조를 취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훈기 의원은 "쿠팡 매출의 90%가 한국 시장에서 이뤄지는데도 쿠팡의 존폐가 걸린 청문회에 김 의장이 출석을 안 한다는 건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포기했다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국민이 호구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 간사인 최형두 의원도 "글로벌 최고경영자라는 이유로 참석 못 하겠다고 하는데 언어도단"이라며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문회에서는 2020년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사망 사건 당시 김 의장이 한국법인 대표에게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도록 확실히 하라"고 지시했다는 언론 보도도 거론됐다.
이와 관련해 참석한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는 "내용이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은 "로저스 대표는 김 의장의 복심이라고 불리는 사람 아닌가. 이것을 모른다고 하면 바지 사장이란 뜻인가"라고 반박했다.
의원들의 비판은 외국인 증인들의 소통 능력과 답변 태도로 번졌다. 로저스 임시 대표와 브랫 매티스 쿠팡 정보보호최고책임자 등 외국인 증인들이 질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동문서답을 반복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로저스 대표 측 통역사는 한국어 소통 가능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전혀 못 한다"고 답했다. 매티스 CISO 측 통역사도 "장모님, 처제, 아내, 안녕하세요 정도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논의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문회 시간 상당 부분이 통역에 소요된 데다, 답변이 핵심을 비켜가면서 여야 의원들의 불만이 커졌다.
조국혁신당 이해민 의원이 쿠팡의 2단계 인증수단 미제공 문제를 지적하며 위법성을 따지자 로저스 대표는 "파워포인트 화면의 규정에 관련된 것이라면 한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어떤 내용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영문 버전 제공을 요청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 김범석 의장의 불출석 사유를 묻자 로저스 대표가 "답변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이 자리에 오게 돼 기쁘다"라고만 말해 질타를 받는 장면도 나왔다.
질문과 답변이 어긋나는 상황이 반복되자 과방위원들은 통역 과정에까지 개입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최민희 위원장을 비롯한 다수 의원은 통역사의 말을 중간에 끊거나 "짧게 답하라", "그만하라"며 재촉했다. 이준석 의원이 통역을 생략한 채 영어로 질의하다가 최 위원장이 "혼자만 알아들으셨다. 통역 듣고 하겠다"고 제지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로저스 대표가 답변 중 "충분한 답변을 드릴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고 언급하자, 이훈기 의원은 "로저스 임시 대표는 허수아비 같다. 시간만 잡아먹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위원장도 "너무 의미 없는 답변이 계속된다. 한국인 증인에게 질문해달라"고 요청했다.
청문회 후반부에는 인공지능 자동번역기 활용 주장까지 나왔다. 최 위원장은 "시간 절약을 위해 자동번역기를 화면에 띄우겠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그냥 번역된다"고 말했다. 다만 회의록 작성을 위해 실제로 AI 번역기는 쓰지 않고 순차 통역 방식이 유지됐다.
한편 청문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박대준 당시 쿠팡 대표의 오찬 회동이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했다. 앞서 한 언론은 김 원내대표가 지난 9월 박 전 대표와 고가의 식사를 하며 쿠팡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정황을 보도했다.
국민의힘은 김병기 원내대표를 향한 공세를 강화했다. 국민의힘 신성범 의원은 "김 원내대표가 피감기관 대표를 만나 인사 청탁한 내용이 있다는데 확인을 안 하고 넘어갈 것이냐"며 김 원내대표의 증인 채택을 요구했다. 같은 당 박정훈 의원도 "쿠팡이 이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여권에 로비하는 것은 이번 청문회에서 밝혀야 할 중요한 쟁점"이라고 주장했다.
식사 자리에 동석한 민병기 쿠팡 대외협력 총괄 부사장은 "밥값을 누가 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그는 "7월 중순쯤 더불어민주당 물가안정 태스크포스의 서초 물류센터 방문이 있었다"며 "센터 냉방시설 점검 결과에 대한 얘기가 주였다"고 설명했다. 쿠팡 측은 물류센터 시설 점검 관련 대화였다고 해명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의 공세를 정쟁으로 규정했다. 김현 의원은 "청문회를 여야 정쟁 도구로 활용하는 행위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민희 위원장도 "언론 보도로 증인을 채택한다면 할 증인이 너무 많다"며 김병기 원내대표 증인 채택 요구에 선을 그으면서도 "식사 영수증을 즉시 제출하라"고 주문했다.
이날 과방위 청문회는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진상 규명보다는 증인 신문 방식과 이해충돌 논란이 부각되며 공방이 이어졌다. 국회는 향후 추가 자료 제출과 후속 점검을 통해 책임 소재를 재차 따져보겠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은 쿠팡 사태를 둘러싼 공방을 이어가며 다음 회기에서도 관련 논의를 계속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