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추모의 시간에 겹친 환생 서사→카카오페이지 웹소설 홍보가 남긴 불편한 여운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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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공기가 아직 장례식장의 정적을 닮아 있던 시기, 한 플랫폼의 화면에는 또 다른 노배우가 죽음에서 깨어나 연기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서사가 떠올랐다. 많은 이들이 텔레비전 속에서 오랫동안 함께 늙어 온 배우를 떠올리며 애도의 시간을 보내던 찰나에, 비슷한 궤적을 그리는 웹소설 홍보가 더해지면서 문화와 상업의 접점에서 복잡한 감정이 일렁였다.  

 

카카오페이지가 선보인 웹소설 원로배우지만 이번 생은 아역부터는 지난달부터 연재를 시작한 작품으로, 대한민국 최고령 원로배우 이근재가 세상을 떠난 뒤 환생해 아역 배우로 다시 연기를 시작하는 설정을 담고 있다. 긴 세월을 버텨 온 배우의 삶과 무대 뒤의 피로, 마지막 순간까지 카메라를 향해 서 있던 노년의 뒷모습이 서사의 중심에 자리하면서, 현실의 한 인물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독자들의 시선을 붙들었다.  

카카오페이지 갈무리
카카오페이지 갈무리

작품이 공개된 뒤 독자들은 주인공의 설정이 고 이순재를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최고령 배우라는 표현과 연기 인생 7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 그리고 긴 세월을 통해 국민의 곁을 지켜온 이력은 이미 대중이 기억하고 있는 한 원로의 삶과 포개졌다. 특히 원로배우가 생을 마감한 뒤 연기자로 다시 태어난다는 구도는 남겨진 이들의 슬픔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더욱 예민하게 다가왔다.  

 

논란의 불씨를 키운 것은 특정 장면의 데자뷔였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이 후배 배우의 부축을 받으며 시상식 무대에 오르는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지난해 KBS 연기대상에서 상을 받기 위해 무대에 오르던 이순재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스크린 속 활자와 현실의 기억이 겹쳐지면서, 독자들은 이것이 우연의 닮음인지, 애도의 정서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차용인지 묻게 됐다.  

 

카카오페이지 작품 댓글란에는 불편함과 당혹감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용자들은 이순재 선생님이 생각난다, 연재 시점이 너무 공교로워 마음이 무겁다, 이름부터 이순재 선생님을 떠오르게 한다, 대상 수상 장면이 그대로 떠오른다 등 구체적인 감상을 남기며 플랫폼이 다뤄야 할 윤리적 감수성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도 논의는 확장됐다. 고인의 사망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 작품의 홍보 이벤트가 집중적으로 진행됐다는 점을 두고, 일부 이용자들은 애도의 시간과 상업적 콘텐츠의 노출이 충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네티즌은 장례식장의 생화가 아직 시들지 않았을 때, 그 삶을 떠올리게 하는 환생 서사를 홍보용 문구로 마주하는 일은 마음의 속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처럼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카카오페이지 관계자는 지난 4일 연합뉴스 등을 통해 입장을 전했다. 관계자는 해당 프로모션은 11월에 준비돼 작가와 사전에 논의된 사안이라 플랫폼이 단독으로 중단을 결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살피지 못해 불편을 느낀 독자들에게 사과한다고 전하며 수용과 숙고의 뜻을 전했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조정을 검토 중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문화 산업에서 허구의 서사는 종종 현실의 인물과 시간을 비켜가면서도 그 그림자를 빌려와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실제 인물이 세상을 떠난 직후, 인생과 죽음을 소재로 한 서사가 상업적 프로모션의 형식으로 전면에 배치될 때, 독자들은 이야기의 미덕보다 먼저 윤리적 균형을 묻게 된다. 예술의 자유와 창작의 상상력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애도의 온도와 속도 또한 사회가 함께 조율해야 할 문화적 감수성의 일부라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웹소설 원로배우지만 이번 생은 아역부터는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계속 연재되고 있으며, 플랫폼과 독자들은 이제 작품의 완성도뿐 아니라 애도와 상업, 허구와 현실의 거리를 어떻게 설정할지라는 질문을 공유하게 됐다. 12월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고인을 떠나보낸 사람들이 남긴 기억은, 픽션과 현실이 맞닿는 지점에서 문화가 지켜야 할 예의가 무엇인지 조용히 되묻게 하고 있다.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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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페이지#원로배우지만이번생은아역부터#이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