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대신 초음파로 치매 공략”…국내 연구진, 알츠하이머 원인 물질 65퍼센트 제거
약물을 쓰지 않고 초음파의 기계적 에너지로만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단백질을 분쇄해 제거하는 비침습 치료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동물 수준에서 입증됐다. 기존 항체치료제가 안고 있던 고비용과 뇌부종, 뇌출혈 같은 부작용 부담을 줄이면서도 병리 단백질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새로운 물리기반 치료 옵션이 열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이번 결과가 향후 퇴행성 뇌질환용 초음파 치료 플랫폼 경쟁의 분수령이 될지 주시하는 분위기다.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은 26일 신경과 김재호 교수 연구팀이 알츠하이머병 마우스 모델을 대상으로 저강도 집속 초음파를 이용해 뇌 속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유의미하게 감소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바이오닉스연구센터 김형민 박사, 연세대학교 약학과 김영수 교수팀과의 공동 연구로 수행됐으며, 2026년 1월 국제 학술지 테라노스틱스에 게재가 확정됐다.

알츠하이머병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과도하게 생성되고 뇌에 축적되면서 시작된다. 이 단백질은 먼저 작은 응집체를 이루고, 시간이 지나면서 실타래처럼 단단하게 꼬인 섬유 구조로 변해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형성한다. 섬유 구조는 독성이 강한 데다 물리·화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이라 분해가 잘 되지 않아 신경세포 사멸과 인지기능 저하를 일으키는 직접적 병리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상용화가 진행 중인 레카네맙, 도나네맙 같은 항체치료제는 면역 단백질이 아밀로이드 베타에 결합해 면역세포가 이를 인식하고 제거하도록 돕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임상시험에서 플라크 감소와 인지기능 저하 지연 효과를 보여 주목을 받아 왔지만, 고가의 정맥 투여 치료라는 점과 함께 면역반응에 따른 뇌부종과 미세뇌출혈 등 안전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연구팀이 선택한 해법은 저강도 집속 초음파였다. 집속 초음파는 돋보기를 통해 햇빛을 한 점에 모으듯, 여러 방향으로 쏜 초음파를 뇌의 특정 부위에 정밀하게 집중시키는 기술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약물이나 조영제를 동반하지 않고, 초음파가 만들어내는 기계적 진동만으로 응집된 단백질 사이 결합을 물리적으로 끊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초음파 강도와 조사 시간, 주파수를 세밀하게 조절해 안전 범위 안에서 최대 효과를 내도록 프로토콜을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연구팀은 먼저 시험관 내에서 응집시킨 아밀로이드 베타를 특수 배양 접시에 담은 뒤 초음파를 조사해 구조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실타래처럼 꼬인 아밀로이드 섬유 구조가 최대 62퍼센트까지 감소했으며, 독성이 특히 높은 것으로 알려진 올리고머 형태도 65퍼센트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화학적 처리 방식과 비교했을 때 초음파만으로 이 정도 수준의 구조 붕괴를 유도한 것은 병리 단백질을 직접 표적으로 하는 물리치료 기술의 유효성을 보여 준 결과로 해석된다.
동물 실험에서도 초음파의 효과가 확인됐다. 알츠하이머병 유전자를 가진 마우스의 뇌를 대상으로 집속 초음파를 조사한 결과, 뇌 조직 내 아밀로이드 플라크의 수와 크기가 모두 뚜렷하게 감소했다. 동시에 혈액에서 측정한 아밀로이드 농도가 약 66퍼센트 증가했는데, 이는 뇌 속에서 쪼개진 단백질 조각이 혈류로 이동해 배출되는 과정이 촉진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약물을 통해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병소 부위에서 바로 단백질 구조를 물리적으로 파괴해 체외 배출을 돕는 새로운 제거 경로를 제시한 셈이다.
초음파 처리가 실제로 독성을 낮추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인간 유래 신경모세포주인 SH SY5Y에 초음파 처리 전후의 아밀로이드 응집체를 각각 투여하는 실험도 수행했다. SH SY5Y는 인간 신경세포와 유사한 특성을 보여 알츠하이머병 연구에서 널리 쓰인다. 실험 결과 초음파 처리를 하지 않은 일반 응집체를 투여했을 때 세포 생존율은 82퍼센트 수준에 머무른 반면, 초음파로 처리한 응집체를 투여한 경우 생존율이 90퍼센트로 상승했다. 이는 초음파가 응집체를 잘게 분쇄해 신경세포에 미치는 독성 강도를 완화했음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다.
현재의 항체 기반 치료제는 뇌혈관장벽을 통과해야 하고, 반복 투여에 따른 전신 부작용과 비용 부담이 크다. 반면 집속 초음파는 두개골을 열지 않고도 특정 뇌 영역에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는 비침습 기술이어서, 반복 시술이 필요하더라도 환자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약물을 병용하지 않고 초음파 단독으로 병리 단백질을 겨냥한다는 점에서, 기존 약물치료를 보완하거나 약물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군에 대한 대체 옵션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뇌종양, 파킨슨병 떨림 증상, 강박장애 등을 대상으로 한 고강도 집속 초음파 치료기가 허가를 받고 상용화 단계에 진입한 상태다. 다만 대부분 병변 조직을 응고시키는 고열 기반 방식으로, 단백질 응집체 자체를 표적으로 하는 정밀 기계 자극형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에 가깝다. 이번 국내 연구는 열이 아닌 기계적 진동을 이용해 아밀로이드 구조를 선택적으로 붕괴시키는 접근법을 동물 모델에서 제시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은 미국과 유럽, 일본 제약사를 중심으로 경쟁이 격화된 가운데, 초음파를 활용한 비약물 치료는 의료기기와 바이오 기술이 결합된 융합 영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두개골 두께와 모양, 뇌 구조가 사람마다 달라 에너지 초점을 환자별로 정밀하게 맞추는 기술이 필요하며, 반복 조사에 따른 미세 조직 손상 위험을 체계적으로 검증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식품의약품 관련 규제 당국도 집속 초음파를 뇌질환 치료에 적용할 때 안전성 평가 기준과 임상시험 설계 가이드를 어떻게 정립할지가 향후 쟁점이 될 전망이다.
김재호 교수는 약물이나 수술 없이 초음파의 기계적 에너지만으로 뇌 내 병리적 단백질을 제거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이번 기술이 아밀로이드 베타에 국한되지 않고 알파시누클레인 등 파킨슨병 관련 단백질이나 다른 퇴행성 뇌질환의 병리 단백질 응집체로까지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단일 표적 항체치료제와 달리, 구조적 응집 자체를 물리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이어서 다양한 단백질 응집 질환에 공통으로 적용될 여지도 열려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팀은 향후 실제 환자에 적용 가능한 맞춤형 초음파 치료 프로토콜 개발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뇌영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별 두개골 특성과 병변 위치를 분석해 최적의 초음파 경로와 강도를 계산하는 알고리즘을 구축하고, 인체 수준에서의 안전·유효성 검증을 위한 전임상 연구를 이어간다는 구상이다. 궁극적으로는 항체치료제와 같은 약물요법과 병행하거나, 초기 환자군을 중심으로 단독 비침습 치료 옵션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우수신진·중견연구사업, 중점연구소지원사업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기관고유사업, 국가과학기술연구회 글로벌 TOP 전략연구단 지원을 통해 수행됐다. 연구 성과는 생물학연구정보센터가 선정하는 한국을 빛낸 사람들 리스트에 포함되면서 학문적 우수성도 인정받았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초음파 기반 비약물 치료가 실제 임상으로 이어져 치매 치료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 수 있을지 중장기적으로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