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하면 엉뚱한 얘기할 수 있다"…법원, 김건희 증인 불출석에 과태료·구인장
정권 핵심 인사를 둘러싼 형사 재판에서 대통령 배우자의 증언을 강제하는 법원 결정이 나오며 정치권이 다시 격랑에 휩싸였다. 건진법사로 불리는 전성배 씨 재판에 증인으로 소환된 김건희 여사가 법원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3부 이진관 부장판사는 15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성배 씨 사건 속행 공판에서 증인 김건희 여사에게 과태료 300만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증인 불출석에 따른 제재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동시에 김 여사에 대한 구인영장을 발부하고, 오는 23일 다시 법정에 출석시켜 증인 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구인에 문제가 없으면 이렇게 진행하고 특별한 사정이 발생하면 변동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계획대로 신문이 이뤄질 경우 같은 날 변론을 종결하겠다는 방침도 제시했다.
형사 재판 관행상 결심 공판 이후 선고까지 통상 한 달가량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전성배 씨 사건의 1심 선고는 이르면 다음 달 내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강제 구인영장 발부는 향후 정치적 파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앞서 김 여사 측은 재판부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며 건강 상태를 이유로 들었다. 사유서에는 저혈압으로 인한 실신, 정신과 질환에 따른 자율신경계 기능 저하 등으로 법정 출석이 어렵다는 취지가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현실과 이상을 혼동해 과거 경험한 바에 대해 엉뚱한 얘기를 하는 경우 많아지고 있다", "의지와 무관하게 왜곡한 기억으로 잘못된 진술을 할 가능성이 높은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달라"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재판부는 이러한 사정을 검토한 뒤에도 증인 불출석은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보고 과태료와 구인장 발부라는 강경 조치를 선택했다. 형사소송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증인 소환에 불응할 경우 과태료 및 구인 영장을 통해 강제 출석을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날 오전 재판에서는 김 여사의 이른바 문고리 3인방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돼 온 유경옥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 증인석에 섰다. 그는 전성배 씨로부터 전달된 샤넬 가방을 김 여사에게 전해준 뒤, 같은 브랜드의 다른 제품으로 교환하는 과정에 직접 관여한 인물로 알려져 왔다.
유 전 행정관은 샤넬 가방 교환을 위해 매장을 찾게 된 경위를 묻는 특검의 질문에 "영부인이 '엄마가 준 건데 가서 가방을 바꿔다 줄 수 있느냐'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21그램 대표의 아내 조모 씨와 함께 샤넬 플래그십 매장을 방문한 이유에 대해 "시간이 없어 웨이팅 없이 갈 수 있는 곳을 찾아달라고 했고, 조씨가 집에 있다고 해서 같이갔다"고 설명했다.
오후에는 인테리어 업체 21그램 대표의 아내 조씨가 증인으로 출석해 자금 흐름에 대해 진술했다. 조씨는 샤넬 가방 교환 과정에서 추가금 324만원을 자신의 카드로 결제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먼저 결제하면 유 전 행정관이 나중에 돈을 보내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2∼3주 후에 남편을 통해 현금으로 받았다"고도 진술했다.
특검 측이 "돈을 돌려받을 의사가 없었던 것 아니냐"고 추궁하자 조씨는 "그건 아니다"라고 부인하며 "통장에 입금하지 않고 가지고 있다가 썼다"고 덧붙였다. 특검은 추가금 결제가 사실상 증여에 해당하는지, 대가성 있는 자금 흐름인지 여부를 따져 묻는 데 공을 들였다.
전성배 씨는 김건희 여사와 공모해 2022년 4월부터 7월까지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으로부터 교단 지원 청탁을 받고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백 등 총 8천여만원 상당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전 씨가 청탁 알선의 대가로 통일그룹 고문 자리를 요구하며 윤 전 본부장에게서 3천만원을 받은 혐의도 함께 적용했다.
또한 전 씨는 복수의 기업들로부터 각종 청탁을 받는 대가로 약 2억원에 이르는 금품을 챙긴 혐의로 지난해 9월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팀은 전 씨가 대통령 배우자와의 친분을 내세워 인사와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처럼 행세하며 금품을 수수했다고 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법원 구인장 발부가 갖는 상징성에 주목하고 있다. 여권은 사법 절차를 존중하되 과도한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인 반면, 야권은 권력 핵심을 겨냥한 수사가 법원의 강제 조치로 이어졌다는 점을 부각하며 공세 수위를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으로 법원이 예정대로 23일 증인 신문과 변론 종결을 마무리하면, 선고 시점에 맞춰 여야 공방이 재점화될 공산도 있다. 이날 법원은 건진법사 사건을 두고 추가 증인 채택보다는 이미 제시된 증거와 증언을 바탕으로 결심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향후 정국은 재판 결과와 맞물려 또 한 차례 정치적 파장을 맞이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