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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보안법으로 중국견제” 미의회, 연내 통과 임박…바이오 공급망 재편

신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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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바이오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하는 미국 생물보안법이 최종 국방수권법 타협안에 포함되면서 글로벌 바이오 공급망 지형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와 연방 기관이 중국계 바이오기업과의 계약을 폭넓게 제한하는 내용이어서 유전체 분석, 의약품 위탁개발생산, 연구시험 서비스 등 민감한 데이터와 기술이 오가는 영역을 중심으로 탈중국 흐름이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이번 입법이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새로운 분기점이자 바이오 산업 공급망 재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미국 의회는 현지 시간으로 7일 국방수권법 타협안 전체 내용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지난 7월 빌 해거티 공화당 상원의원과 게리 피터스 민주당 상원의원이 제출한 생물보안법안이 8장 E절 851조 특정 바이오기술 제공자와의 계약 금지 조항으로 편입됐다. 국방수권법은 미국 연방정부의 국방 예산과 정책의 큰 틀을 정하는 연례 법안으로, 통상 연내 처리를 목표로 신속히 처리되는 특성이 있다.

이번 생물보안법은 미국 행정부와 연방 기관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는 특정 바이오기업과 조달, 계약, 대출, 보조금 등 모든 형태의 경제적 관계를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법안에서 바이오기술 제공자는 유전체 분석, 시퀀싱 장비, 시약, 세포·유전자치료 관련 제조 서비스, 위탁개발생산 등 바이오 장비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 전반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특히 방위, 정보, 공중보건 안보와 직결되는 생물학 데이터와 제조 역량을 가진 기업들이 주요 타깃으로 지목된다.

 

협회에 따르면 이번 법안은 지난해 미국 의회에서 논란을 불러온 생물보안법 초안의 절차적 허점을 상당 부분 보완했다. 당시 법안에서는 규제 대상으로 지목된 5개 중국 바이오기업이 어떤 기준과 절차로 우려 기업으로 지정됐는지, 지정 해제는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한 규정이 부재해 의회 내에서도 과도한 행정 재량과 투명성 부족에 대한 반발이 이어졌다. 그 결과 입법 동력이 약화되며 처리에 실패한 바 있다.

 

새 타협안에서는 우려 바이오기업으로 지정되는 경우 해당 기업에 서면 통지하고, 국가안보와 법 집행 이익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지정 사유와 관련 정보를 제공하도록 했다. 기업은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지정에 반대하는 정보와 주장을 제출할 수 있으며, 미 정부는 이 절차와 기준을 명확히 안내해야 한다. 또한 지정 취소가 가능한 조건과 절차를 고지하도록 해 최소한의 소명권과 구제 경로를 제도적으로 마련했다.

 

법안 발효 후 1년 이내에 미국 관리예산국은 우려 바이오기업 명단을 공표해야 한다. 이 명단에는 국방권한법 1260H 조항에 따라 매년 국방부가 연방관보에 게재하는 미국 내 중국군사기업 리스트가 연동된다. 여기에 더해 외국 적대국 정부의 지시나 통제를 받거나 사실상 운영되는 기관 중 바이오 장비·서비스의 제조, 유통, 조달에 관여하면서 미국 국가안보에 위험을 초래한다고 판단되는 기관도 추가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계약 제한의 범위와 시점도 구체적으로 규정됐다. 특정 우려 기업으로 직접 명시된 경우, 연방조달규정 개정 후 60일이 지나면 해당 기업과의 신규 조달, 계약, 대출, 보조금 제공이 전면 금지된다. 기타 우려 기업으로 지정된 경우에는 90일 이후부터 동일한 제한이 적용된다. 사실상 미국 연방정부와 공공기관, 국방 관련 연구기관이 이들 기업과 맺는 모든 형태의 비즈니스가 차단되는 셈이다.

 

다만 기존 거래에 따른 시장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유예 조항도 담겼다. 기타 우려 기업과 이미 체결된 계약이나 합의에 따라 생산 및 제공 중인 바이오 장비와 서비스에 대해서는 최대 5년간 적용을 유예한다. 미국 내 병원, 제약사, 연구기관 등이 당장 대체 공급처를 찾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공급 공백과 가격 급등을 완화하려는 완충 장치로 해석된다. 그 사이 미국 및 동맹국 내 대체 공급망 구축을 유도하는 효과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입법 일정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국방수권법 상하원 타협안은 이번 주 중 하원 본회의 표결에 부쳐진 뒤 상원으로 송부돼 찬반 투표를 거치게 된다. 양원을 통과할 경우 대통령 서명을 통해 최종 발효된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국방수권법의 특성상 시간 절차상 연내 반드시 처리돼야 하는 법안이라는 점을 들어 생물보안법 조항도 함께 통과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업계에서는 법안 시행 시 미국 내 유전체 분석 서비스와 의약품 위탁개발생산 분야에서 중국 기업의 입지가 크게 축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병원과 연구기관이 대규모 유전체 데이터를 중국 기업 장비와 플랫폼을 통해 생성·분석해 온 구조가 빠르게 재편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특히 차세대염기서열분석, 바이오리액터와 같은 핵심 장비와 CDMO 서비스 의존도가 높은 영역에서 미국 내 혹은 동맹국 기업으로의 수요 이동이 가속될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 바이오 시장에서 퇴출 압력이 커지는 동시에, 자국 내 데이터와 기술 독자 생태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미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에서 경험한 디커플링 흐름이 바이오 분야로 확장되는 셈이다. 미국 역시 바이오 제조 인프라와 디지털 헬스 데이터 인프라를 자국 중심으로 재배치하는 정책 기조를 강화할 수 있다.

 

협회는 미국이 추진 중인 의약품 관세 부과와 약가 인하 정책에 더해 생물보안법까지 본격 시행될 경우 내년 글로벌 의약품 공급망과 기업 간 시장 경쟁 구도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중국 CDMO와 원료의약품, 바이오 장비에 의존해 온 다국적 제약사와 의료기관들이 공급처 다변화를 서두를 수밖에 없고, 유럽과 한국, 인도 등 대체 생산 거점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될 여지도 있다.

 

다만 우려 기업 지정 절차의 투명성 보완에도 불구하고, 지정 기준의 객관성과 정치적 활용 가능성에 대한 논란은 이어질 수 있다.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특정 국가 기업을 광범위하게 배제하는 조치가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과 기술 혁신 경쟁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한 장기적인 평가는 아직 필요하다. 산업계는 결국 이번 법안이 실제 시장에서 어느 수준까지 강도 높게 집행될지, 그리고 각국 정부와 기업이 어떤 속도로 공급망 재편에 나설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신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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